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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 우리 헌법 전문의 일부다. 표현은 다양하겠지만, 대부분 다른 민주국가의 헌법 내용도 유사하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세월호 참사’는 그런 국가의 기능과 역할이 총체적으로 붕괴된 사례다. 미국의 ‘9·11 참사’는 이러한 기본적 측면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정부와 국회가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안전처’를 신설하고, 특별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미국이 9·11 이후 ‘국토안보부’를 신설하고 국회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활동한 것과 유사한 대응을 한 것이 하나의 방증이다. 정부 및 의회의 조사와 별도로, 독립 ‘9·11조사위원회’가 설립되어 2년간 조사활동을 벌인 것도 우리 ‘세월호 특별위원회’의 모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두 사건에 대한 두 국가의 대응에 근본적인 차이가 한 가지 발견된다. 바로 ‘피해자에 대한 태도’이다. 9·11 발생 직후 뉴욕 소방당국은 전체 인력의 절반을 참사 현장인 무역센터빌딩에 투입했고, 뉴욕시경 역시 구조인력을 최대한 급파했다. 추가 붕괴가 일어나면서 이들 중 411명이 사망했다. 미국 역사상 구조활동 중 가장 많은 구조대원이 사망한 사례로 남게 된 것이다. 당시 부시 대통령과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사건 발생 직후부터 상황을 직접 파악하고 신속한 결정을 내리며 ‘피해자 및 국민과 함께’하는 리더십과 효율적인 관리능력을 보여줬다. 연방재난관리청(FEMA)을 중심으로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세심한 지원과 의료 및 심리치료를 제공했다. 의회와 독립위원회의 조사결과 역시 CIA와 FBI 등 국가 안보체제의 심각한 무능과 비효율을 그대로 공개하고 개선책을 제시하며 피해 발생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피해자 가족과 국가, 그리고 시민사회가 하나가 되어 피해와 후유증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 뉴욕 한가운데 참사 현장에 건립된 ‘9·11 기념관’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생생한 참사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사건 발생 초기부터 피해자와 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제2차 피해’가 끊임없이 발생해 왔다. 구조 임무를 맡은 해경은 자신들의 안위를 돌보느라 배에 발도 붙이지 않고 300여 생명을 포기해 버렸다. 이런 사태에 대비해 만든 통영함은 방산비리에 발목이 잡혀 출동조차 하지 못했다. 대통령을 만나러 가겠다는 유족들은 경찰에 의해 ‘진압’당했고, ‘사찰’당했다.

아직까지 9명의 실종자가 ‘세월호 안에’ 있는 상황에서 더 늦기 전에 인양을 해서라도 시신을 찾고 장례를 치러주고 싶다는 실종자 가족들의 염원은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정치인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에 의해 짓밟히고 조롱당하고 있다.

4·16가족협의회가 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 후 가진 세월호 가족 결의 의식에서 단원고 희생자의 어머니가 삭발을 하는 동안 아이의 학생증을 꼭 쥐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이제 일주일 후면 ‘세월호 참사 1주기’이다. 이대로라면, 정부 여당과 세월호 가족들은 상호 불신을 바탕으로 한 적대적 관계에 더욱 깊이 빠져들 것이다.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은 그런 정부와 여당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아 투쟁의 길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우리 헌법을 만든 선열들과 세월호 희생자들이 결코 바라지 않는 모습이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당리당략을 떠나 ‘세월호 참사’에 대해 반성하고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이 겪은 고초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또한 비용 문제를 떠나 세월호 인양을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세월호 가족들과 야당 및 시민사회와 함께, 세월호 특별위원회가 정쟁의 도구가 아닌, 진상조사와 재발방지 그리고 피해자 추모 및 기념을 향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내는 초석이 될 수 있도록 신뢰를 쌓은 뒤 독립성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대한민국 정부의 역할이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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