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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조선 명탐정> 등 너무도 친근한 소설과 영화 속 주인공들이 대한민국에서는 명백한 ‘불법’이다.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누구든지 정보원, 탐정, 그 밖에 이와 비슷한 명칭을 사용해 영업을 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독립적 민간인’으로 “비밀과 미스터리를 해결하고 진실을 발견해 나쁜 사람을 혼내주고 억울한 사람을 구해주는” 만화 속 ‘명탐정 코난’이 되겠다는 ‘꿈’을 가진 우리 아이들에게 ‘그건 형사처벌 받는 불법’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도 슬픈 일이다.

영화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 _경향DB


사전을 찾아보면 탐정은 ‘숨겨진 일이나 사건 따위를 추적하여 알아내는’ 일 혹은 사람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호기심과 정의감에 기반을 둔,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활동이다. 게다가 소중한 사람이나 물건을 잃어버렸거나, 어려운 문제나 위기에 봉착했을 때, 혹은 개인이나 가족, 단체 또는 사업상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전문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겐 ‘절박한’ 존재다.

물론 이런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경찰과 검찰 등 국가기관이 존재한다. 하지만, 늘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고 개인이나 단체 혹은 업체의 ‘사적인’ 이해나 사정보다는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는 본질적인 한계를 가졌다.

가족이 갑자기 실종되었는데, 납치 흔적이나 협박전화 등 ‘명백한 범죄의 징후’가 없기 때문에 공권력인 경찰이 나설 수 없다며 고개를 젓는다. 결국 생업을 포기하고, 아무런 기술이나 경험, 전문지식 없이 잃어버린 가족의 인상착의가 담긴 전단지를 들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닐 수밖에 없다. 억울한 범죄 혐의 누명을 쓰고 경찰과 검찰 등 국가기관의 일방적인 수사가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만 모으고 있는 상황에서도 변호사는 ‘법률적 자문’만 해줄 수 있을 뿐, ‘수사’의 전문가는 아니라며 곤란한 표정을 보인다.

거액을 빌린 후 잠적한 친지나 회사의 기밀을 빼돌린 채 사라진 임직원을 찾을 길이 막막한 이들 역시 부지기수다. 그런가 하면, ‘합법적인 탐정의 부재’라는 틈새를 파고드는 해결사, 흥신소, 심부름센터 등 전혀 검증이나 관리를 받지 않는 무자격자들의 불법적이고 탈법적인 조사활동으로 인한 피해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물론,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크다. 탐정이 허용되면 돈 많은 사람이 유능한 탐정을 고용해 소송이나 분쟁에서 부당한 우위를 점하는 ‘수사의 사유화’, 연인이나 배우자의 불륜 증거를 찾기 위해 고용된 사설탐정들의 ‘무분별한 사생활 침해’, 범죄수사라는 국가의 역할과 기능의 일부를 민간 탐정에게 맡겨버리는 공공연한 ‘직무유기’, 검증하기 어려운 탐정 업무의 특성을 악용해 절박한 의뢰인에게서 돈만 뜯어내는 피해 등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이들도 다수다.

하지만, OECD 국가 중 탐정을 금지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으며, 관련 학계에서도 “탐정업 자체를 불법화해 처벌하는 우리 상황은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 및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하고 있으며, 오히려 민간 조사 활동을 음지로 밀어내 부작용과 피해를 통제하지 못할 수준으로 키워왔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국가 공권력의 누수 우려, 다른 말로 민간 경쟁자를 허용하지 않겠다며 완강히 반대하던 경찰과 검찰 등 국가 수사기관들의 태도도 많이 달라졌다. 차라리 탐정을 법제화해서 엄격하게 자격요건을 정하고 활동 범위와 방식을 규제해 부작용과 피해를 방지하는 것이 낫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국회에서도 ‘공인탐정법’ 제정안, ‘경비업법’ 개정안 등 탐정제도 도입을 위한 입법 노력이 있었지만 번번이 무산되었다. 그 이면 에는 케케묵은 ‘기관 간 경쟁과 알력’이 도사리고 있다.

그동안 ‘수사의 국가 독점’이라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소리 맞춰 ‘탐정 반대’를 외치던 경찰과 검찰이 이제는 서로 탐정제도의 주관부서가 되겠다며 지나친 경쟁을 하는 바람에 제도화가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만 ‘탐정을 허하라’. 국가기관만 조사할 수 있다는 시대착오에서 벗어나라.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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