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서울대학교가 교수들의 ‘갑질’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원로 교수들의 제자 성추행 파문이 충격을 던진 데 이어 동료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이들을 감싸고 선처를 탄원하는 집단행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2013년에 실시한 서울대 인권센터의 조사 결과, 학부와 대학원 학생들이 ‘교수의 노예’ 노릇을 한다는 처절한 고발이 줄을 이었다. 비단 서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서울대는 그나마 학생들과 인권센터의 용기와 노력으로 문제를 밝히고 드러내기라도 하니 다행이다.

문제 교수 퇴출 운동을 벌이고 있는 학생들이 제작한 배지. 성추행·성매매·성접대… 3性교수 반대’라고 새겨져 있다. (출처 : 경향DB)


전국 대학 중 교수들의 학생 성희롱이나 성추행, 대학원생들에 대한 사적인 심부름과 인격모욕, 심지어 논문 대필이나 연구업적 가로채기, 연구수당 강탈하기 등 ‘갑질’ 문제가 없는 곳은 한 군데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학위논문 심사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의 거마비와 식비, 사례비 등을 모두 학생이 부담하는 것은 아예 상식이자 공식이 되어버렸다. 교수는 충분한 연봉과 연구비 등을 받는 고액소득자들이고, 학생들은 비싼 등록금에 생활비까지 부담해야 하는 ‘저소득 혹은 무소득 고객’들인데, 등록금에 당연히 포함되어 있어야 할 논문 심사비용, 특히 거마비와 식비, 사례비까지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너무나도 잘못된, 군대나 조폭 못지않은 권위적이고 권력적인 상하관계로 상징되는 ‘교수-학생’ 관계는 교수들의 전반적인 도덕적 해이와 윤리의식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옳고 그름’보다는 ‘이익이냐 손해냐’를 선택과 판단의 기준으로 삼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4대강 비리, 방산 비리, 자원외교 비리, 세월호 참사를 부른 해운 비리, 그리고 안전불감증을 입에 달고 살게 만든 전반적인 행정 비리의 출발과 전개와 심화 과정에 늘 교수와 학자들이 이런저런 위원이나 사외이사나 연구용역 수행자로 참여해 온 참담한 실상이 만들어졌다. 소위 ‘적폐’의 핵심에는 악한 정치인과 못된 관료와 함께 반드시 비양심적인 교수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니 현실과 타협하며 이익을 좇아 양심을 파는 교수들을 일컫는 ‘학레기(학자+쓰레기)’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우리 학생들, 어린이 청소년들의 현실을 만들어낸 주범 역시 교수들이다. 정권에 빌붙어 그들이 원하는 대로, 입시제도와 교육제도를 이리저리 비틀고 뒤튼 결과가 도저히 손대지 못할 공교육의 붕괴를 야기한 것이다. 그 주범인 교육계 교수들의 자녀들은 대부분 외국에 나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있다. 마치 불량식품 제조사 사장이 자식들에게 절대로 자기 회사 제품을 먹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교수들은 성실하게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교수 공동체’가 ‘학레기’들의 준동과 분탕질을 막지 못하고 체면이나 이익, 혹은 관계 때문에 그들을 방관, 방조하고 있는 현실은 모든 교수를 공범으로 만들고 있다. 한국 교수들의 문제가 더 심각한 이유는, 그들 중 다수가 외국 대학 학위 과정에서 지도교수들로부터 학술적 동료나 교육산업의 고객으로 충분히 대접받았으면서, 한국에서 교수가 된 뒤에는 갑질과 부패의 부역자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분야의 전문가, 가르치거나 연구하는 사람’을 뜻하는 ‘학자’의 영어 ‘Scholar’나 한자 ‘學者’가 공히 ‘배우는 사람’을 원래 뜻으로 하고 있음은 의미가 크다. 학술 권력과 권위를 내세우며 부리고 지배하고 군림하고, 이를 이용해 부나 이익을 취하는 ‘학레기’여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끊임없이 배우며, 자신에게서 배우는 학생을 동료로 존중하고, 진리를 탐구하며, 잘못된 것은 주저 없이 비판하고, 위협에 굴하지 않고 이익을 위해 타협하지 않는 자. 그리고 그 대가로 안정된 생활과 연구 여건을 국가와 사회가 보장해주는 사람, 진정한 ‘학자’가 되어야 한다. 교수들만큼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하는 수많은 시민들이 바라는 딱 한 가지다. 필자도 이 비판의 대상 중 하나임을 밝힌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