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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잔뜩 부른 채, 입안 가득 음식을 넣고, 더 이상 먹지 않을 떡 두 개를 남이 먹을까봐 양손에 움켜쥔 놀부의 모습. 지금 우리 검찰의 모습이 그렇다.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헌법에 명시된 영장청구 독점권’, 수사권과 경찰 및 특별사법경찰관리에 대한 수사 지휘권, 독점적 기소권, 독점적 공소유지권, 형집행권 등 재판을 제외한 모든 형사사법 기능을 다 틀어쥔 검찰이 정보 수집과 범죄예방 업무까지 손을 뻗치더니, 급기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을 넘어서는 대규모 ‘과학수사부’를 창설했다.

명분은 ‘경찰 및 국과수와의 선의의 경쟁’이다. 자신이 지휘하는 부하와 경쟁하겠다고 현장 실무자들에게 지급되는 장비와 물품들을 챙겨 갖는 임원이나 간부를 본 적이 있는가? 정작 검찰과 경쟁이 필요한 것은 억울함을 토로하는 피해자들과 피의자들, 그리고 그들을 대리하는 변호사들이다.

우리 형사법의 대원칙은 ‘당사자 대등주의’, ‘무기 평등의 원칙’이다. 검찰과 피고 측 변호인이 양 당사자로 진실 발견을 위해 대등하게 경쟁하며 서로 동등한 무기, 즉 증거와 진술 확보 수단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새로운 과학수사 기구가 필요하다면,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 같은 기관에 법과학연구소 설립을 허용하고 지원하든지, 민간 법과학연구소를 인증하는 것이 옳다.

영국의 경우에도 2012년 국립법과학연구소(Forensic Science Service)를 폐쇄하고 증거 분석 감정업무를 민간과 각 지방경찰청에 분산 이양했다.

미국 역시 각 주나 시 경찰 법과학연구소와 민간 법과학연구소들이 국가인증과 감사를 받으며 증거 분석과 감정 업무를 수행한다.

가뜩이나 어려운 나라 살림에 이중 삼중의 과학수사기관을 만들 필요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이미 발생한 뒤 변화가 생긴 범죄 현장과 불완전한 인간의 인지 지각 능력에 의존해 ‘범행을 재구성’하고 범죄혐의자를 ‘추정’해 유무죄를 입증해 나가는 과정인 형사절차는 ‘인간적 오류(human error)’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그 절차의 공개성과 투명성, 검증가능성이 긴요하다.

최근 우리 사회를 극한 갈등으로 내몰고 있는 유병언 추정 시신, 세월호 참사 원인, 천안함 침몰 원인 등의 ‘사건’들은 검찰에 ‘또 하나의 국과수’가 없어서 의혹의 대상으로 남은 것이 아니다. 수사 절차와 과정에 대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 브리핑실에서 유상범 3차장이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문건유출 사건'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유병언 추정 시신의 경우, 국가권력에 속하지 않은 제3의 과학수사 기관에서 DNA 분석 등 검증을 했다면 의혹은 쉽게 가라앉았을 것이다. 경찰이나 검찰이나, 중립과 독립 내지 진실 발견보다는 권력에 대한 충성 경쟁에 매진하는 모습으로 비치는 것은,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도긴개긴’이다.

더구나 지금 검찰은 채동욱과 윤석열 등 권력과 맞서 싸우는 의로운 검찰을 몰아내고,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축소수사 의혹을 받고 있으며,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김학의 불기소, 대통령 5촌 살인사건 의혹 보도기자에 대한 무리한 기소 등 권력의 입맛에 맞는 검찰권 행사를 연이어 해오고 있다.

대규모 과학수사부는 그 대가로 받은 세뱃돈이나 ‘떡’이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검찰은 형사사법과 관련한 모든 권력을 한손에 틀어쥐고, 권력이 원하는 대로 진실을 만지고 왜곡하려 한다는 의혹을 받아온 지 오래됐다. 그 오랜 의심을 떨쳐내지 못한다면, 결코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

과학수사와 법과학은 검찰이 장악해서는 안되는 중립지대이다. 피고 측, 기소 측이 모두 활용할 도구여야 하며,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눈을 가린 저울이어야 한다. 검찰은, 법과학 기관에 대한 감시와 감독을 할지언정 장악해서는 안된다. 두 손에 떡 든 검찰, 소화하지 못할 떡을 먹으면 탈이 난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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