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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군대에서 선임들이 후임들의 군기를 잡을 때면 으레 “푸닥거리 한번 하자”고 했다. 그러면 후임들은 바로 표정관리에 들어가면서 행동이 재빨라졌다. 최근 아들을 군에 보낸 선배 말에 따르면 요즘은 예전과 달라 일부러 군기 잡는다고 푸닥거리하는 일은 거의 없단다.

‘푸닥거리’는 무당이 하는 굿에서 유래된 말이다. 무당이 간단한 음식을 차려놓고 부정이나 살 따위를 푸는 것을 가리켜 ‘푸닥거리’라고 한다. ‘푸닥거리’를 ‘푸다꺼리’ ‘푸닥꺼리’로 잘못 아는 이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푸닥거리’는 한글맞춤법 규정에서 조금 벗어난 표현이다.

‘거리’는 ‘국거리, 반찬거리’에서 보듯 명사 뒤에 붙거나, ‘마실 거리’처럼 어미 ‘을’ 뒤에 쓰여 내용이 될 만한 재료를 뜻한다. 이들 쓰임새를 보면 ‘푸닥거리’가 바른말이 되려면 ‘푸닥’이란 명사가 있어야 한다. 한데 어느 사전에도 명사 ‘푸닥’은 없다. 결국 ‘푸닥거리’는 ‘푸닥+거리’ 구조로 이루어진 말이 아니다.

우리말 조어법에 어긋난다는 얘기다. 맞춤법 규정에 따르면 어떤 말의 형태를 살려 적을 근거가 없을 때는 어원을 밝히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적어야 한다. ‘뒤에서 일을 보살펴서 도와주는 일’을 일컫는 말이 ‘뒤치닥거리’가 아니라 ‘뒤치다꺼리’가 맞는 이유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푸닥거리’는 ‘푸다꺼리’로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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