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한번 잡솨 봐. 다음날 아침에 반찬이 달라져. 애들은 가라.” 그 옛날 장날이면 찾아오는 ‘떠돌이 뱀장수’가 있었다. 뱀장수의 현란한 말과 차력 쇼에 정신이 팔려 늦도록 장터에서 놀다가 집에서 혼이 나곤 했다. 이젠 다 옛말이 되었지만.

‘잡솨 봐’는 ‘잡숴 봐’가 바른말이다. ‘먹다’의 높임말이 ‘잡수다’이고, ‘잡수다’의 존대어는 ‘잡수시다’이다. 우리말은 높임말이 발달해 있다. 한데 공손이 지나쳐 잘못 쓰는 높임말도 많다. ‘귀먹다’를 높여서 말한답시고 ‘귀 잡수시다’라고 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귀 잡수시다’는 ‘귀를 음식으로 먹는다’란 뜻이다. 이땐 ‘먹다’에 ‘으시’를 넣어 ‘귀먹으시다’라고 해야 한다.

‘귀먹다’의 ‘먹다’는 ‘막히다’의 뜻을 지닌 옛말이다. ‘귀가 막혀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다’란 의미다. 요즘은 ‘막히다’의 뜻을 지닌 ‘먹다’가 홀로 쓰이는 일은 없다. ‘가는귀먹다’ ‘귀먹다’ ‘먹먹하다’ ‘먹통’에서 보듯 몇몇 단어 속에 ‘먹’의 쓰임새가 살아 있을 뿐이다. ‘가는귀먹다’는 사전에 한 단어로 올라 있다. ‘가는 귀 먹다’로 띄어 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참, ‘귀가 멍멍하다’도 자주 틀리는 말이다. ‘갑자기 귀가 막힌 듯이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를 뜻할 때는 ‘멍멍하다’가 아니라 ‘먹먹하다’를 써야 한다. ‘멍멍하다’는 ‘정신이 빠진 것처럼 어리벙벙하다’란 의미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지난 칼럼===== > 알고 쓰는 말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재와 아줌마  (0) 2016.06.17
으르고 어른다  (0) 2016.06.03
십상과 숙맥  (0) 2016.05.19
푸닥거리  (0) 2016.05.12
볼 장 보다  (0) 2016.05.05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