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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그렇게 되기가 쉽다는 뜻으로 ‘쉽상’이 널리 쓰인다. 주로 ‘무엇하기 쉽상이다’ 꼴로 많이 쓴다. 순우리말일 것 같은 ‘쉽상’은 정작 사전에 없다. ‘쉽상’은 한자말 ‘십상’이 바른말이다. 사람들이 한자말인지도 모르고 우리말 ‘쉽다’에서 온 것으로 생각해 ‘쉽상’으로 쓰는 듯하다.

‘십상’은 십상팔구(十常八九)의 준말이다. ‘열에 여덟, 아홉으로 거의 예외가 없음’을 이른다. 요즘은 십중팔구(十中八九)란 말을 더 많이 쓴다. 한데 ‘십중팔구’는 ‘십상팔구’의 일본식 표현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일제강점기 이전 문헌에서는 ‘십중팔구’란 표현을 거의 찾을 수 없다. ‘십상’이란 말은 지금도 자주 쓰지만 ‘십중’의 쓰임새는 없다. 하여 터무니없는 말이 아니다.

‘십상팔구’를 ‘십상’으로 쓰는 것처럼 사자성어를 두 자로 줄여 쓰는 말이 더러 있다. 흔히 ‘쑥맥’으로 잘못 알고 있는 ‘숙맥’도 그중 하나다. ‘숙맥’은 콩과 보리를 아울러 이른다. ‘숙맥’은 숙맥불변(菽麥不辨)에서 나왔다. 처음엔 글자 그대로 ‘콩인지 보리인지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쓰이다가 ‘사리 분별을 못하고 세상 물정을 잘 모름’을 이르는 말로 의미 영역이 넓어졌다.

요즘 한자 병기 문제로 시끌시끌하다. 어휘력 향상을 위해 한자 병기가 필요하단다. 너무 숙맥 같은 생각이 아닌가. 어쩌면 한자 외우느라 날밤 새우기 십상일지도 모르는데.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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