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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과월호를 나눠준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이가 직접 책을 가지러 오겠다고 전화를 걸어왔다. 택배로도 보내주는 책을 굳이 가지러 오다니, 무거울 텐데. 게다가 지방에서 서울까지. 들른 김에 차 한 잔 할 수 있느냐고, 머뭇머뭇하는 목소리에서 하고픈 말이 아주 많은 마음이 읽혀 여유 있는 날로 약속을 잡았다.  

찾아온 그는 앳된 얼굴의 초등학교 교사였다. 교대를 졸업하고 발령받은 지 일 년 만에, 학교를 그만둬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일 년 동안 꾸준히 “아이들에게 죄를 짓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했다. 교실에서 자신의 역할은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통제하는 사람, 해야 할 것을 놓치지 않도록 관리하는 사람이었다며. 나는 흔히들 학교를 파놉티콘에 비유하고 교사를 간수 역할에 비유하는 것이 좀 불편했지만, 일면 사실이기도 했다. 많은 시도를 하고 있지만 한국 공교육이 ‘입시’와 ‘성적’이라는 목적을 바꾸지 못하는 한 교사의 역할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신념에 차 있는 사람보다 갈등 속에 있는 사람이 더 좋은 선생이 될 수 있다”는 우치다 다쓰루(<교사를 춤추게 하라>, 박동섭 옮김, 민들레)의 말을 인용하며, 이제 겨우 첫발을 뗐으니 학교가 어떤 곳인지, 그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알 때까지 더 견뎌보시라 했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동료들을 찾아 고민을 나누시라고도 했다. ‘교육을 바꾸어야 한다’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는 무거운 사명감은 좀 내려놓고 내 교실만이라도 덜 불행하게 꾸려보겠다는 작은 목표로 1인 교육혁신 프로젝트를 시작해보시는 건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조언을 건네면서도 사실 자신은 없었다. 학교를 더 오래 경험하는 것이 그에게 좋을지, 오래 머무른다고 지금과 다른 결론을 낼 수 있을지, 본인이 원하는 대안의 길을 공교육 안에서 찾을 수 있을지. 다만 최선을 다해 그를 위로하고 싶었고, 진심으로 그의 교직 생활을 응원하고 싶었다. 질문을 던지며 갈등하는 그가 고마웠다. 

교사란 무엇인가. 새삼스러운 그 질문에 답을 찾으며 아이들 곁에 있는 이는, 적어도 내가 알기엔 많지 않다. 사범대학이 임용고시 대비 학원으로 전락한 것을 한탄하던 대학생이나 교장 눈치, 학부모 눈치에 분란을 만들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는 젊은 교사들을 흔히 보아온 탓이다. 

제일 불행한 교사는 ‘아이들을 싫어하는 교사’다. 싫어하는 존재들과 인생의 긴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이나 불행한 일은 없다. “그래도 선생님은 아이들이 너무 예쁘다니, 그 예쁜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좀 더 힘을 내보시라”며 도움이 될 만한 교사단체나 교사 연수프로그램 등을 알려주면서 그를 힘껏 설득했다. 

두 시간 남짓한 얘기 끝에 같이 점심을 먹고, 조금 밝아진 표정으로 돌아서는 젊은 선생님 가방에 잡지 과월호와 함께 책 몇 권을 찔러 넣었다. 고민이 있을 때 언제든 또 들르시라는 말과 함께. 그가 학교를 그만두지 못하게 붙잡고 싶었던 건, 갈등하는 교사일수록 더욱 아이들 곁에 남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서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모른 채 위험하게 질주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신의 자리가 어디쯤 있는지 고민하는 교사라면 ‘어른들이 원하는 것들’을 해내느라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할 겨를도 없는 아이들에게 분명 다른 삶을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장희숙 |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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