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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9일 서울시교육청이 서울 소재 자율형사립고(자사고) 13곳에 대한 재지정 평가에서 경희고·배재고·세화고·숭문고·신일고·이대부고·중앙고·한대부고 등 8개 학교의 재지정 취소를 발표한 이후 각양각색의 의견들이 개진되었다. 특히 자사고가 일반계고로 전환되면 고교 서열화가 심화된다,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진다, 하향 평준화가 된다, 강남8학군이 부활한다,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이 박탈된다 등 볼멘소리도 적지 않게 나왔다. 이 중 필자로서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다. ‘강남8학군이 부활된다’는 것이다.

강남8학군(강남구·서초구)은 1970년대 강남 지역이 재개발되면서 강북에 있던 경기고·휘문고·중동고·서울고·숙명여고 등이 이곳으로 이전하고, 이 학교들의 상위권 대학 진학 실적이 높아지면서 입시의 뜨거운 지역이 되었다. ‘교육특구’라는 별명까지 얻었고, 사교육의 대명사 대치동 학원가라는 상징적인 거리까지 생겨나게 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자율형사립고 폐지를 주장하며 일반고 종합 지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남8학군은 1970년대 이후 한 번도 죽은(?) 적이 없다. 다만 2015학년도 대학입시에서 학생부(교과·종합)전형이 도입되면서 다소 불리해진 적은 있다. 교과 성적(내신) 등 학생부 기록 사항이 수능처럼 전체 수험생을 대상으로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학교에서 평가하여 작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학생부전형으로 선발하는 모집 인원이 2020학년도 대학입시의 경우 전체 4년제 대학 모집 정원의 67.0%로 많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자사고가 일반계고로 전환된다고 해서 바뀌게 되는 것이 아니다. 강남8학군이라고 해서 유리하고 불리하고 한 것도 아니다. 

만약 대학입시 제도가 과거 학력고사와 수능 성적으로만 선발할 때로 돌아간다면 강남8학군은 입시에서 ‘대박’이 날 수도 있다. 그러나 현행 대학입시 제도로 볼 때 그럴 일은 거의 없어 보인다. 아차, 교육부가 2022학년도 대학입시부터 정시 수능전형으로 30% 이상을 선발하라고 권고하고 있으니 강남8학군이 좀 더 유리해질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고려대·서울대·연세대 등 상위권 대학이 수시모집에서 학생부종합전형으로 60% 이상 선발하는 것을 유지하는 한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학생부종합전형으로만 놓고 보면 강남8학군은 결코 유리하지 않다. 그런데 왜 강남8학군의 열기가 식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서울대와 의학계열 합격자수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서울대 2019학년도 합격자수 상위 50위권에 강남8학군 고등학교가 무려 11곳이나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그것은 수시 학생부종합전형보다 정시 수능전형 합격자수가 많다는 것과 재수생 비율이 매년 적지 않다는 점이면.

강남8학군 자사고들의 2019학년도 서울대 최초 합격자수를 수시와 정시로 나누어 살펴보면, 세화고 수시 7명·정시 18명, 세화여고 수시 4명·정시 9명, 중동고 수시 8명·정시 12명, 현대고 수시 8명·정시 5명, 휘문고 수시 5명·정시 19명 등으로 현대고만 수시 합격자수가 많았고, 나머지 학교들은 정시 합격자수가 많았다. 졸업생 중 재수 비율은 2019년 2월 졸업자를 기준으로 휘문고 63.9%, 중동고 61.9%, 세화고 50.8%, 현대고 50.3%, 세화여고 43.9% 순이었다. 이처럼 강남8학군 자사고들만 봐도 서울대 합격은 정시 수능전형이 수시 학생부종합전형보다 두 배 이상 많고, 재수 비율은 50%를 넘는다.

‘모로 가도 서울대만 가면 된다!’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교육과정에 따른 것으로 봐야 할지 혼란스럽다. 이명박 정부에서 자사고를 확대할 때 ‘학생들에게 다양한 교육 환경을 제공해주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그 다양한 교육이 정시 수능전형으로 대거 합격시키는 것이었나? 

강남8학군은 자사고가 일반계고로 전환된다고 해서 다시 뜨는 곳이 아니라 원래부터 떠 있던 곳이다. 우리 사회와 정부는 ‘모로 가도 서울대만 가면 된다’는 식의 교육 방식에 대해 깊이 있게 고뇌했으면 한다. 부모의 경제력과 사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나는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데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

<유성룡 입시분석가 에스티유니타스 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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