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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덩케르크>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배를 타기 위해 바닷가에 모여 있는 영국군 머리 위로 쏟아지는 독일 공군의 폭격이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학살당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속절없이 당하던 군인이 울분에 차서 말한다. “공군은 대체 뭐하고 있는 거야?”

정말 공군은 독일 폭격기가 아군 머리 위에 폭탄을 쏟아부어대도록 수수방관했을까? 사실 공군 역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문제는 공중전이 벌어지는 장소가 덩케르크 해안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영국 공군이 독일 폭격기를 물리치면, 덩케르크 해안에서는 그냥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패하면, 즉 조종사가 목숨을 잃으면 독일 폭격기가 나타나서 폭탄을 쏟아붓는다는 것.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니 육군은 욕을 한다. 폭격이 없는 것은 공군의 승리 때문이 아니라 그냥 당연한 것으로 느껴지고, 폭격이 있을 때는 공군이 욕을 먹는다. 결국 공군은 욕만 먹는다. 심지어 치열하게 싸우다 간신히 살아남은 조종사에게도 육군들은 “공군은 대체 뭐하는 거야?”라며 욕을 한다. 하지만 의기소침한 그 조종사에게 도슨의 한마디. “괜찮아. 내가 알고 있으니.” 이 말이 훈장보다도 더 귀중한 보상이 되었다.

이 장면에서 학교가 오버랩되었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동료 교사들의 신세가 공군 조종사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위대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교육 없이는 성장할 수 없다. 그런데 교육은 그 과정이 순탄할수록 티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저절로 성장한 것처럼 느낀다. 마치 평온한 덩케르크의 하늘이 저절로 주어진 것처럼 느껴지듯. 이렇게 교육은 티가 나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교육은 문제가 생겼을 경우 바로 티가 난다. 그래서 교사들은 평소에는 투명인간처럼 무시당하다 문제가 발생할 때만 세상의 관심을 끈다. “선생들은 대체 뭐하고 있는 거야?”라는 말과 함께. 철밥통 타령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은 무명 교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최초의 대통령이지 싶다. 주요 일간지들의 “교사 돌려치기” 연례행사일이 된 스승의날에 세월호에서 순직한 기간제 교사를 기억하며 “스승에 대한 국가적 예우를 다하려 한다”고 정중히 말하는 모습에서 의기소침한 파일럿을 위로하던 도슨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그 말이 의전 담당관이 짜놓은 각본이 아니라 대통령의 진심일 것이라고 믿고 싶다.

세월호 참사는 보여주었다. 세상은 무슨 일만 생길 때마다 “선생들은 뭐하는 거야?”라고 손가락질하지만, 그래도 학교에는 공치사도 못 받을 “티도 나지 않는 일상의 교육”을 묵묵히 수행하는 교사들이 있음을. 그들 대부분은 참사가 아니었다면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을 평범한 교사들이었지만, 대통령부터 선사, 해경에 이르기까지 책임을 져야 할 담당자가 한결같이 썩어 문드러진 적폐의 종합판이었던 세월호 참사에서 자기 본분을 다한 유일한 공직자였음을.

대통령의 말처럼, 이번 정부만은 이 고마움을 잊지 않는 정부가 되었으면 한다. 교육의 개혁은 별 대단한 것이 아니다. 이들 교실 안 무명 교사들의 어깨에 신바람을 일으켜 주는 것이다. 최근 교사들을 완전히 배제한 국가교육회의 구성안을 보니 무척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이 걱정이 다만 기우에 그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권재원 |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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