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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선 KTX 두 량이 선로를 이탈해 전복됐다. 자칫 참사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사고다. 연고가 있어 강릉에 자주 가는 나는 평창 올림픽에 맞춰 무리하게 공사를 밀어붙일 때부터 내심 걱정을 했으면서도, KTX 개통 후로는 아예 고속버스를 타지 않게 되었다. 몇 번 빨리 가보고 나니, 버스를 타는 것이 길에 시간을 버리는 일처럼 여겨졌다. 휴게소에 들러 서둘러 우동 한 그릇을 들이켜는 재미나 도로가 막힐 때면 창밖으로 강원도의 자연을 천천히 바라보던 즐거움도, 오차 없이 정해진 시간에 목적지로 데려다주는 KTX의 매력에 비할 수 없었다. 인간은 점점 더 빠르게 결과를 얻어내는 기술에 많은 혜택을 누리면서도, 한편 길들여져가고 있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절대 시간을 단축할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인간의 성장이다. 동물과 식물마저 성장촉진제로 자라는 속도를 앞당기는 세상이지만, 한 인간이 자라는 일은 그럴 수가 없다. 육아가 더욱 힘들어진 이유 중 하나는 빨라진 세상의 속도만큼, 아이들이 자라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더디게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남들보다 빨리 자랐으면, 혹은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았으면 하는 부모의 조급한 마음이 왜곡된 교육열로 나타나기도 하고, 이 정도 했으면 좀 철이 들어야 하지 않나 하는 교사의 답답함이 아이들에 대한 원망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9일 강원 강릉시 운산동 KTX 강릉선 열차 사고 현장에서 코레일 관계자들이 선로에 있는 객차를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고 열차는 지난 8일 오전 7시35분쯤 강릉역을 출발해 서울로 가던 중 강릉역에서 5㎞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탈선했다. 이 사고로 직원·승객 등 16명이 다쳤다. 복구작업은 10일 새벽에 완료될 예정이다. 정지윤 기자

평일 낮 시간, 열댓 명의 청소년들이 출판사 거실에 모여 앉아 어두컴컴하게 불을 꺼놓고 영화를 보고 있다. 공간민들레 홀씨과정의 청소년들이다.

“학교에(만) 배움이 있을까?” 1990년대 말, 민들레가 던진 이 불온한 질문에 응답하며 찾아든 청소년들의 자발적 커뮤니티는 지금 ‘공간민들레’라는 청소년 과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중 유연한 자치 구조의 홀씨 과정은 정해진 시간표도, 교육과정도 없다. 일주일에 한 번 그룹미팅이라 불리는 전체모임과 몇 개의 수업 말고는 자발적으로 꾸려가는 소모임이 대부분이다.

이런 10대 시절을 보낼 수 있다니, 그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아이들은 일주일에 사나흘 모여서 영화도 보고, 캘리그래피 연습도 하고, 청각장애인 친구에게 수화도 배우고, 검정고시 준비도 하고, 그림도 그린다. “책은 어떻게 만들어요?”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요?” 출판을 하는 내게 궁금한 것을 물어오면 틈틈이 답해주다가, 더 자세히 알고 싶을 땐 일주일에 한 번씩 따로 만나기도 한다. 굳이 수업이라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이렇게 그때그때 자신들에게 필요한 배움을 찾아간다.

누군가는 미래를 준비해야 할 중요한 10대 시절을 이렇게 보낸다고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낸다. 그러나 준비한 대로 미래가 도래하는 건 아닐뿐더러,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이렇게 보내는 것이다. 정해진 시간표가 아니라 백지를 손에 쥐고, 그 백지를 어떻게 채울지 스스로 고민하면서. 다수가 선택하는 탄탄대로는 아니지만, 때로 자기 속도대로 걷는 오솔길에서 더 행복한 이도 있지 않은가.

ADHD, 청소년 자해 같은 현상들 또한 어쩌면 떠밀리는 급물살 속에서 제 속도대로 살아보고자 하는 아이들의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남과 비교하거나 재촉하지 말고, 성장에 필요한 개인의 절대적 시간을 오롯이 존중해주자. 그 과정에서 필요한 부모와 교사의 역할이 있다면, 더디고 굼뜬 시간을 견디며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일일 것이다.

<장희숙 |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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