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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1월이면 교사들을 난처하게 만드는 연례행사가 돌아온다. 학교폭력 예방 승진 가산점 대상자 심사다. 말은 좋다. 학교폭력을 예방하자는데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리고 학교폭력 예방에 헌신한 교사가 보상을 받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문제는 보상의 종류가 승진가산점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주어지는 방식이 경쟁이라는 것이다.

승진가산점이란 교사가 교감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경력 평정에 부여하는 것으로 10년을 부지런히 모으면 만점이다. 그런데 교감은 수업을 하지 않는 교원으로 교육행정직에 가깝다. 그러니 이 승진이라는 말 속에는 교사들에게 교육을 직접 담당하는 자리에서 한발 비켜난 행정직으로 옮겨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라는 반교육적인 메시지가 숨어 있다.

게다가 학교폭력 예방 승진가산점은 전체 교사의 40% 이내에게 부여하도록 되어 있다. 교사들더러 이 40% 안에 들어가기 위해 학교폭력 예방 경쟁을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경쟁의 보상이 승진가산점이기 때문에, 이는 마치 10년간 부지런히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경쟁하면, 그 보상으로 애들 안 가르쳐도 되는 자리로 보내주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교육에 대한 사명감이 높고 헌신적인 교사들에게는 상당히 모욕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말이다. 교육당국이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고 지도하는 교육행위를 마치 경쟁에서 탈락했거나 나태하기 때문에 받는 벌처럼 바라보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당연히 교육 열의가 높은 교사일수록 이 승진가산점이라는 유인에 별로 반응하지 않는다.

학교폭력 예방은 승진가산점을 놓고 경쟁하는 몇몇 교사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학교폭력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올베우스나 살미발리 같은 학자들도 학교폭력에 대해 가해학생을 제재하고 피해학생을 치유하는 정도로 해결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학교폭력은 학생들의 경쟁 밀도, 스트레스, 빈부격차, 가정, 학교, 사회의 폭력에 대한 둔감성 같은 것들이 모두 어우러져 발생하는 복합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학교폭력은 승진가산점을 놓고 경쟁하는 몇몇 교사들의 노력 봉사가 아니라 학교 전체가, 교육 체제 전체가, 나아가 사회 전체가 협력해야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학교폭력 적기로 유명한 북유럽 학교들의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들을 살펴보아도 가해학생, 피해학생뿐 아니라 모든 학생과 교원들이 함께 참여하도록 되어 있다. 일부 가해자나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라 학교 전체, 학생들의 상호작용 전체를 개선함으로써 학교폭력을 예방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학교폭력 예방에는 학교 공동체 전체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40%에게만 가산점 등의 보상을 줄 테니 선생들더러 경쟁하라는 발상은 사실상 학교폭력 예방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는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교육당국이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만들어 놓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에 불과하다. 교사들에게 교육에서 멀어지는 것이 보상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주고, 교사들을 무의미한 경쟁으로 몰아넣으며, 학교폭력 예방에 필수적인 전체 학교 공동체의 협력을 훼손하는 학교폭력 유공교원 가산점은 백해무익하며 그 존재 자체가 폭력이다. 즉시 폐지해야 한다. 다행히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가산점 신청자가 전체 40%에 미달되어 난감한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난 3년간 학교폭력이 꾸준히 줄어들었다.

<권재원 |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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