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학생부(학교생활기록부)는 교과 더하기 비(非)교과다. 내신 더하기 비(非)내신이라 하는 게 더 정확할 수 있겠다. 교과 우수상, 교과 세부능력특기사항 등이 교과로 분류되지 않고 비교과, 즉 비(非)내신으로 분류되니 말이다. 학생부 비교과는 교사가 쓴 기록물이다. 아닌 것도 있지만 대체로 그렇다. 다른 입시전형과 구별되는 학생부종합전형의 특징은 무엇일까? 비교과가 입시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학생부 비교과를 쓰는 데서 비롯되는 어려움은 그 성격이 다른 것과 현저히 다르다. 학생부를 쓸 때 교사는 아주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운동경기에 비유해서 말하자면, 심판과 선수라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역할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다.

학생부를 쓸 때 교사는 심판이어야 한다. 학생부 기록이 학생부종합전형의 중요한 입시자료로 사용되므로 당연히 공정하게 기록하는 것이 맞다. 거짓말하거나 과장하거나 윤색하면 안된다. 교사는 냉혹한 심판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교사는 학생과 함께 뛰는 선수여야 한다. 다른 학교의 ‘학생+교사’팀과 경쟁하는 우리 학교 ‘학생+교사’팀의 선수여야 한다. 학생부를 쓸 때 교사는 자기 학교 학생의 장점과 재능을 돋보이게 해야 한다. 교사가 선수 역할을 하지 않고 심판 역할에 치중하는 것은 자기 팀 선수인 학생을 배반하는 것과 같다.

어떻게 해야 하나? 참으로 벗어나기 어려운 딜레마다. 물론 대부분의 교사들은 어느 한쪽 역할에 더 충실하기로 마음을 먹긴 한다. 교사마다 그 정도가 제각각 다르겠지만 대부분 심판 역할이 아닌 선수 역할에 더 충실하기로 마음먹는다. 완전한 거짓말까지는 못하더라도 과장이나 윤색 정도는 눈 딱 감고 해주는 쪽으로 입장을 정한다. 나 또한 그런 교사들 중 하나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먹었다고 해서 마음의 고뇌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심판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어려운 일이다. 심판 역할에 충실하란 것은 교사가 제자에게 갖는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감정을 외면하란 얘기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게 실제의 현실 속에선 애초 불가능에 가깝다. “실험도구를 잘 다루고…”라고 쓸 때 실험도구를 잘 다루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어떻게 명확히 구별하겠는가? “감정을 살려 시를 잘 낭송하고…”라고 쓸 때 도대체 한 반의 몇 명까지를 잘한 것으로 인정해야 하나? “학교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키우고…”라고 쓸 때 경각심을 키운 것과 그러지 않은 것을 가리는 기준이 있을 수 있는가? 무엇보다 아무리 교사라 해도 학생의 내면세계와 심리상태를 어떻게 자세히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교사들은 학생부를 쓰는 내내 괴로울 수밖에 없다. 한편으론 학생부를 너무 좋게 좋게만 써주는 것 같아 괴롭다. 다른 한편으론 모자라고 부족하게 써준 것만 같아 괴롭다. 혹자는 학종으로 인해 교사의 힘이 세졌다고 말한다. 학생부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 앞에서 고양이 앞의 쥐처럼 굴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 측면도 있기야 하겠지만 교사야말로 학생부 때문에 한없이 초라하기만 하다. 고양이 앞의 쥐처럼 초라하다. 교육자로서의 양심을 너무 자주 속이는 것 같아 초라하고, 그렇게 쓴 학생부가 학생·학부모의 높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것 같아 초라하고…, 이래저래 초라하기만 하다.

<이기정 | 서울 미양고 교사>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