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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쿨러 부모들이 모여 있는 채팅방에 링크 하나가 공유됐다. 딸아이를 입학시키지 않고 홈스쿨링한 엄마가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최근 기사였다. 아이가 열두 살이 될 때까지 집에서 직접 가르친 이 엄마가 아이를 방치하거나 학대한 정황은 없었으나, 판사는 “장기간 외부와 격리된 생활로 아이의 복지를 저해했다”며 아동복지법 위반(아동 유기, 방임) 혐의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채팅방의 홈스쿨러 부모들은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불안해했다. 간혹 비정상적인 부모의 아동학대가 기사화되며, 홈스쿨링에 대한 단속과 처벌이 강화되는 추세다.
이례적인 이번 판결은 개인에게 교육의 선택권이 있는가,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의 홈스쿨링은 1990년대 말 시작된 대안교육운동과 그 흐름을 함께한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대안학교와 함께 입시와 경쟁 중심의 공교육에 대한 대안으로 활기를 띠었다. 당시 귀농·귀촌 운동과도 맞물리면서 가족 모두가 시골로 이주해 홈스쿨링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은 부모의 일을 돕거나 시골생활을 함께 꾸리며 필요한 공부를 스스로 찾아서 했다.
최근에는 홈스쿨링을 선택하는 양상이 좀 달라졌다. 자발적으로 학교를 ‘안’ 가기보다는 ‘못’ 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여러 이유로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아이를 도시 속에서 고립시키지 않기 위해서 부모는 직장을 그만두고서라도 아이를 돌보는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의무교육은 ‘의무를 다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교육인 셈이다.
여성가족부와 교육부에서 ‘학교 밖 청소년’ 혹은 ‘학업 중단 학생’에 대한 지원을 늘리면서 홈스쿨러를 구분하는 경계 또한 모호해졌다. 한 홈스쿨러는 ‘혼자 집에 갇힌’ 듯한 용어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스스로를 세상에서 배우는 자, 로드스쿨러라고 칭하기도 했다. 일부 부모는 학습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개인 맞춤형 특별 교육으로 홈스쿨링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교육에 대한 개인의 선택은 존중되어야 한다. 홈스쿨링은 미국은 물론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합법이고, 아시아·아프리카까지 이를 허용하는 나라가 점점 늘고 있다. 누구든 접근할 수 있는 교육 콘텐츠가 도처에 널린 세상에, 학교 시스템만을 고집하는 일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다양한 교육의 형태를 허용해 오히려 공교육의 경계를 허물고 지평을 넓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일찍이 홈스쿨링을 합법화한 미국에서는 홈스쿨러들이 혼자 하기 어려운 음악이나 미술, 체육 같은 수업을 공교육에서 함께 듣기도 한다. 집단적으로 듣는 수업을 줄이고 개인의 진도와 관심에 따른 개별화 교육을 실시하는 하이브리드 스쿨도 미래 교육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학교 아닌 곳에서 배우고자 하는 이들을 법으로 처벌할 게 아니라 홈스쿨링의 장점을 살리되 그 개별화가 각자도생이 되지 않도록 제도를 마련하고, 그 개별화가 고립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사회적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일이 필요하다.
올해 2학기부터 고등학교 의무교육이 시행된다. 의무교육 기간이 연장된다고, 한 해 5만명 가까운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는 현실이 쉽사리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들이 20만명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학력’이 아니라 각자의 삶을 제대로 풀어갈 ‘실력’일 것이다.
<장희숙 |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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