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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관련 굵직한 행정소송들이 이어지고 있다. 자사고 지정 취소와 관련한 소송 기사들이 수십건씩 포털을 채운다. 갈등과 분쟁이 가득한 불안정한 상황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학생들과 학부모이지 다른 누구가 아니다. 애초에 실현되지 말았어야 할 교육정책 하나가 오랜 시간 동안 우리 교육을 흔들고 있다.
자사고 제도가 애초에 실현되지 말았어야 할 정책이라고 주장하는 큰 이유는 우리 헌법정신에 반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 제3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함으로써 매우 분명하게 교육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교육의 기회균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판시한다. “교육의 기회균등이란 국민 누구나가 교육에 대한 접근 기회, 즉 취학의 기회가 균등하게 보장되어야 함을 뜻하므로, 교육을 받을 권리는 국가로 하여금 능력이 있는 국민이 여러 가지 사회적·경제적 이유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국가의 재정능력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모든 국민에게 취학의 기회가 골고루 주어지게끔 그에 필요한 교육시설 및 제도를 마련할 의무를 부과한다.”(99헌바63, 2001·1·18)
이에 비추어 볼 때 자사고 제도는 어떠한가. 학교교육을 통해 다양한 교육과정을 제공받기 위해서는 일반고의 3배, 일부 전국단위 자사고의 경우엔 연간 학비가 2500만원으로 일반고의 9배에 달하는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일반 국민들이 감당하기에는 힘든 수준이다. 교육과정의 다양성은 재력 있는 부모를 가진 아이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되어서는 안된다. 아이들은 모두 다르다. 각자의 적성과 흥미, 진로에 따라 다양한 교육과정의 경험을 제공하여 그 잠재력이 가장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하는 데 학교교육의 목적이 있다. 사회통합전형이 있다고 하지만 서열의 정점에 있는 일부 전국단위 자사고들은 법령상 의무규정이 아니라는 등의 이유로 사회통합전형 학생들을 거의 받지 않고 있다. 자사고 제도는 헌법 제31조 제1항의 교육기회의 균등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
교육에 미치는 부작용도 상당하다. 헌법재판소도 인정하듯 우수 학생 선점에 기반하여 대학입시에 치중한 결과 고교서열화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2018헌마221, 2019·4·11). 혹자는 자사고를 폐지할 것이 아니라 일반고와 자사고가 경쟁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교육생태계가 파괴된 현 상황을 전혀 모른 채 내뱉는 말이다.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려면 전제가 있다. 출발선 등의 조건을 유사하게 맞추어야 한다. 자사고와 일반고의 조건은 이미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다. 입학생들의 내신 성적만 보더라도 단번에 확인할 수 있다.
양보할 수 없는 우리 헌법의 가치를 지키고 교육을 정상화하며 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선 법령 개정을 통한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이 유일한 길이다. 지정 취소를 통한 폐지는 소송을 전제하고 있어 법적 혼란이 더 크고 갈등과 분쟁이 심화될 소지가 높다. 이미 지정 취소가 예정된 학교들 거의 모두가 행정소송을 예정하고 있고 전북교육청은 교육부에 대한 권한쟁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방안이 아니다. 법령에 따르면 평가결과가 우수할 경우 자사고로 재지정되어야 한다. 자사고 제도 자체의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는 것이다.
법령 개정을 통하여 일괄적으로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할 경우 자사고 측에서는 신뢰보호이익의 원칙, 학교선택권 침해 등을 문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교육과정의 다양성이라는 자사고 제도 신설의 목적 자체가 형해화된 지금, 자사고 제도에 대한 신뢰보호가치가 높지 않으며 교육기회의 균등 및 고교서열화 해소 등의 공익적 가치에 비추어 보았을 때 신뢰보호의 이익이 더 크다고 볼 여지도 적다. 또한 선 지원 후 추첨제, 일반고 안에서 학생 중심 선택의 교육과정 다양화 제도가 마련되고 있는 만큼 과도하게 학교선택권을 침해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헌법재판소가 밝힌 것처럼 학교 제도는 교육환경의 변화에 따라 국가가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하여 교육정책을 탄력적·합리적으로 운영할 필요성이 크다. 또한 교육과 학교 제도에 관하여 어떠한 제도를 도입하여 시행하여 왔다고 하더라도 그 제도의 예상치 못한 부작용 등이 발견될 경우 이를 시정하여야 하는 것은 교육정책을 수립하는 국가의 의무이다(2018헌마221, 2019·4·11). 국가는 헌법의 교육기회 균등의 가치를 수호하고 아이들의 잠재력이 발현할 수 있는 학교교육을 실현하기 위하여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내용으로 초·중등교육법 및 그 시행령을 개정하라. 그것이 국가의 의무이다.
<홍민정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상임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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