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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방에서 학생 상담을 하다가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노노재팬 운동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주변의 친구들은 일본제 필기도구를 많이 쓰고 있는데, 쓰던 것은 버리지는 않지만 새로 구입할 때는 꼭 원산지를 확인해서 일본제가 아닌 것을 고르고, 가능하면 국내 제품을 사용한단다. 그런 맥락에서 얼마 전 방학식 날에 학교 친구들을 대상으로 방학 중 노노재팬 활동 캠페인을 하려고 했다가 학교에서 ‘정치적으로 미묘한 사안에 대한 캠페인은 불가’라고 허락을 받지 못해서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요즘 노노재팬 운동이 정부나 단체, 어떤 기관의 주도가 아닌 순수 민간 차원에서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고, 그 동력들 중 하나가 바로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라고 할 수 있다. 2010년 무렵부터 위안부 피해할머니들의 수요시위에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대거 참여하고, 위안부소녀상 건립운동에도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활약하면서 정치적 사안에 대한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렇게 중·고등학생들의 참여가 적극적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입시제도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교과서를 익히고 문제의 정답을 잘 맞히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고 관심과 참여를 통해서 사회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리더의 역량도 입시 평가 대상이 되면서 시간을 쪼개서 참여하는 다양한 사회활동이 강조되었고 학생들이 교과서 밖으로도 시선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이런 의미 있는 활동에도 심각한 문제가 존재한다. 예컨대, 지금 노노재팬 캠페인의 경우, 일본에 대한 저항운동인가 아니면 아베 정부의 정치적 목적에 따른 경제정책에 대한 반발인가, 또는 우리 정부의 잘못된 외교정책에 따른 인접국의 반발인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한데도 이에 대해서 학생들이 공부하며 스스로 질문하고 반론하며 토론하는 과정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직 배움의 과정 중인 학생들에게 적절한 탐구와 토론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은 한·일 갈등 과정에서 발견해야 하는 문제의 핵심과 앞으로 미래사회에서 필요한 사회적 역량을 준비할 수 없을 것이 아닌가? 

단순하게 친일은 나쁘고 우리는 옳다는 선동적 논리나, 우리가 잘못했으니 빨리 고개를 숙이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정치적 해법만 횡행하는 현실은, 자칫하면 건강하게 시작된 학생들의 문제제기와 캠페인이 방향성을 잃고 극단의 논리로 흐르게 될 위험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2017년부터 서울시교육청에서 추진하고 있는 보이텔스바흐 합의에 기반한 서울형 민주시민 논쟁수업은 큰 의미가 있다. 보이텔스바흐 합의란 구서독에서 1976년에 ①학생에게 강압적인 교화와 주입식 교육 금지. ②학문적·사회적 논쟁 상황을 교실수업에서 그대로 재현. ③학생 실생활과 관련 있는 주제에 대해 학생 자신의 이해관계를 스스로 판단·결정하는 원칙에 합의한 것을 말한다.

학생들은 ‘교복 입은 민주시민’이기 때문에, 학교의 교실뿐만 아니라 청소년수련관이나 청소년문화의집과 같은 청소년 기관에서도 상시적으로 교육과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이 좋겠다. 최근 한·일 간의 갈등은 어른들에게는 해결해야 할 짐이지만 학생들에게는 아주 좋은 세계시민 학습 주제라는 것을 이해하자.

<한왕근 | 청소년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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