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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유명 음식 평론가가 ‘혼밥’ 문화를 사회적 자폐라고 표현하여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직장 상사, 거래처와 같이 원하지 않는 사람들과 억지로 식사하는 고역을 치러야 하고, 혼밥시간이 유일한 삶의 숨구멍인 직장인들의 상처에 소금을 끼얹은 탓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가장 큰 스트레스의 원인이 야근이나 승진 압박이 아니라 억지로 함께 먹어야 하는 회식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을 정도다.

회식의 취지는 좋다. 함께 술과 밥을 나눔으로써 직장동료 간 단합을 꾀하고, 그동안 맺힌 이런저런 응어리를 풀어준다는 데 누가 나쁘다고 하겠는가? 그런데 오히려 회식이 직장생활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면 그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폐지하거나 개선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의 직장 문화가 가부장적이고 억압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직장 문화가 퇴근시간 지나 밤 늦은 시간까지 끝도 없이 이어지니 고역도 이런 고역이 없을 것이다. 회식뿐 아니라 단합대회, 연수, 워크숍 등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야유회나 1박2일 이상의 단체여행 역시 회식의 변종이라는 점에서 고역이긴 마찬가지다.

교사도 직장인이라 회식과 단체 워크숍 따위의 고역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교사는 여성 비율이 높기 때문에 육아 등의 문제까지 겹쳐 그 고역의 정도가 더 크다. 하지만 일단 회식과 단체 워크숍 따위의 일정이 잡히면 당당하게 불참을 말하기 어렵다. 민주주의를 가르쳐야 하는 교사들이 속해있는 학교라는 기관이 교장을 영주로 삼는 봉건 체제하에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교장은 회식이나 워크숍에 교직원 대부분이 참석하기 바라며, 빈자리가 많으면 권력누수가 발생한 것처럼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회식, 워크숍 등도 업무의 연장이라고 강변하며 참석을 종용하는데, 아무리 자유의지를 보장한다고 해도 이를 거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학교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야근과 회식을 당당하게 거부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풍토이고 현실 아닌가? 이 문제는 개인의 용기로 해결될 일이 아니며, 지침과 규정으로 정리해 주어야 할 일이다. 최근 대기업에서는 1차로 끝내고 술을 강요하지 않으며, 문화행사를 권장한다는 등의 회식 규정을 만들어 각 부서에 시달하고 있다고 한다. 교육당국도 이런 일상의 작은 개혁에 소홀하지 않아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회식이나 1박2일 행사의 명목은 협의회다. 그런데 술을 마시면서 협의한다는 것, 업무의 연장인 협의회를 근무시간 이후에 길게 가지는 것은 조리에 맞지 않다. 따라서 교육당국이 “협의회비는 원칙적으로 근무시간 내에 지출하고, 부득이한 경우 저녁 7시 이내에 마치며, 술값 지출은 금지”라고 한 줄 써서 내리면 된다. 워크숍 등 1박2일 행사의 경우, “휴일 근무 강요가 되지 않도록 하고, 전체 교직원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방식보다는 학습 동아리 등과 연계하여 소규모 테마여행 방식으로 자율적으로 진행하는 것을 권장”이라고 지침 한 줄 내려 보내면 된다.

학교의 비민주적인 문화는 학교장의 권력이 공문서와 절차를 넘어 일상생활까지 침투할 때 공고해진다. 그리고 회식과 전체 워크숍 등은 암암리에 이를 재생산하고 일상화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사소해 보이지만 학교민주화를 위한 큰 발걸음이 될 수 있는 작은 개혁, 전체 회식과 워크숍 폐지에서 의외로 크게 내디딜 수 있다.

권재원 |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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