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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재벌 회장 손자와 연예인 아들 등이 연루된 서울 숭의초등학교 학생들의 폭력 사건은 사회에서 가장 정의롭고 공정해야 할 교육 공동체가 얼마나 부조리하고 불공정하게 운영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줬다. 학교폭력 사건도 문제지만 그것의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숭의초 교사들의 행태는 과연 이들이 교육자로서 인격과 자질을 갖췄는지 의심을 품게 한다. 숭의초는 사건이 불거지자 학생들 사이의 가벼운 장난이라고 했지만 서울시교육청 감사 결과 ‘있는 집’ 자녀의 비행을 감추기 위해 담임교사부터 교장까지 조직적으로 관여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교 측은 피해 학생에게 사과는커녕 진술을 강요하고 전학을 권유하는 등 비교육과 몰상식의 극치를 보였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피해 학생 부모는 사건 초기부터 재벌 회장 손자를 가해자로 지목했지만 학교 측은 의도적으로 묵살했다. 담임교사는 가해 학생들이 피해 학생을 괴롭힌다는 것을 알고도 수련회 때 같은 방을 쓰게 할 정도로 학교폭력에 무신경했다. 교장은 되레 피해 학생에게 전학을 권유하고, 교감은 피해 학생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도 뒤늦게 경위 설명 등을 강요하며 2차·3차 고통을 안겼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에 참여한 생활지도부장은 조사 자료를 가해 학생 부모에게 무단으로 제공하고, 피해 학생 부모가 “야구방망이로 맞았다”고 진술했음에도 무슨 이유인지 회의록에는 기록되지 않았다. 학폭위 규정도 숭의초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학부모 4명, 교원 2명, 학교전담경찰관 1명 등 총 7명으로 학폭위를 구성해야 하지만 학교전담경찰관은 배제했다. 또 생활지도부장이 위원과 간사를 겸해 애초부터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었다.

학교폭력은 교사 책임하에 피해자와 가해자를 중재하는 것이 최선책이라는 숭의초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해 학생 징계가 능사도 아니다. 하지만 이것과 사건을 조작·은폐하는 것은 엄연히 별개의 문제다. 교육청은 교장 등 관련 교원 4명을 중징계하라고 숭의초 학교법인에 요구하고, 이들을 수사기관에 고발했다. 그러나 피해 학생과 부모가 그동안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이 정도로도 부족하다. 어린 학생들이 벌써부터 유전무죄(有錢無罪)의 병폐를 경험했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하다. 남을 괴롭히고 거짓말을 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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