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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59년 10월15일부터 11월11일까지 이병기 등 13인의 장서가를 찾아 그들의 서재를 소개하는 글이 실렸다. 1. 이병기 매화옥서실(梅花屋書室) 2. 박종화 파초장서실(芭蕉莊書室) 3. 이희승 일석서실(一石書室) 4. 김상기 독사연경지실(讀史硏經之室) 5. 최현배 노고산방(老姑山房) 6. 김원룡 삼불암서실(三佛菴書室) 7. 이병도 두계서실(斗溪書室) 8. 황의돈(黃義敦) 해원루서실(海圓樓書室) 9. 윤일선 동호서실(東湖書室) 10. 안인식 미산서실(嵋山書室) 11. 김두종 양당서실(兩堂書室) 12. 양주동 무애서실(無涯書室) 13. 김용진 향석서실(香石書室).

국문학자(이병기), 국어학자(이희승·최현배·양주동), 사학자(김상기·이병도·김원룡·황의돈·김두종), 의사(윤일선), 유학자(안인식), 서화가(김용진), 소설가(박종화) 등이 그 시기 대표적인 장서가로 꼽혔던 것이다.

13편의 글을 쓴 분은 송재오(宋在五)인데(내력을 전혀 모르겠다), 글이 워낙 심한 국한문혼용이어서 지금 세대는 거의 읽을 수가 없을 것이다. 대체로 각 장서가의 서재와 장서 중 가치가 있는 것을 소개하고 있다. 워낙 내용이 많아서 일일이 다 소개할 수는 없고 흥미로운 것을 몇 가지 골라본다. 가장 멋있는 서재는 아마도 김상기의 ‘독사연경지실’로 보인다. ‘역사를 읽고 경전을 연구하는 서재’란 뜻이다. 국한문으로 된 것을 약간 풀어본다.

밝고 정리가 잘돼 서실과 집필실인 작은 방이 옆에 있었고, 그 속에 1만3000권 장서가 서가에 즐비하다. 책상에 놓인 다소의 문방과 기완(器玩), 대소 현판은 조화된 위치에 속(俗)을 넘었고, 여러 개의 도자기를 비롯한 고물, 골동은 서재에서 역시 품 높은 벗이 되고 있었다.

시·서·화 삼절(三絶)로 이름 높은 신자하(申紫霞) 친필로 된 ‘독사연경지실’은 그대로 ‘東濱讀史硏經之室’로 대현판이 걸려 있었고, 음각, 양각의 장서인 대소 10여개 아취가 풍겨 있었다.

책과 문방, 골동품, 도자기, 현판, 장서인 등이 제자리에 있는 아취 넘치는 서재다. 글 쓰는 사람의 서재란 본래 이런 것이다. 앞서 자신의 서재가 책이 정리되어 있지 않고 대개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고 했다.

하지만 송재오의 ‘일석서실’에 대한 묘사는 사뭇 다르다. 일석서실은 ‘약 만권의 장서로 꽉 차 있는 밝고 깨끗한 서재’로 한쪽에 목록함까지 비치한 ‘새삼 서장(書藏)의 의(義)와 충(充)’을 얻은 그런 깔끔하고 정돈된 서재였던 것이다.

손꼽을 만한 책으로는 1485년 간행된 <관음경(觀音經)>, 만력 2년 이전에 간행된 것으로 짐작되는 <여씨향약> 언해본을 꼽았다.



장서는 역시 전공별로 구별되는데, 최현배의 ‘노고산방’은 엄밀한 성격답게 ‘만권 서적이 정연히 분류된 목록’이 있었고, 장서에는 역시 국어학의 희귀 자료가 많았다. 곧 귀중서의 대부분이 운서(韻書), 언해본이었다. <두시언해> <주역전의구결(周易傳義口訣)> <훈몽자회> <이문집랍> <화동정운통석운고(華東正韻通釋韻考)> <십구사략언해> <마경초집언해> <노걸대언해> <병학지남언해> <예기언해> <연화경언해> 등이 그것이다.

사물로서의 책에 몰두한 흔적이 보이는 장서가는 이병기다. 그는 필체, 교판(校板), 소위 서향(書香)을 좇는 애착과 더불어 책의 초각, 초의 위(僞)·정(正)·각(刻)의 정(精)·조(粗), 종이의 미·악, 장정의 교·졸, 인(印)의 초종(初終) 등을 따져서 책을 수집했던 것이다. 이병기의 <가람일기>를 보면, 그가 책을 수집하는 과정을 아주 세밀하게 엿볼 수 있다.

약간 특이한 취향의 장서가도 있다. 고고미술사학자인 김원룡의 장서에 <고활자취요(古活字聚要)>란 책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임진왜란 전후의 20여종 활자의 견본을 모은 것이라고 한다. 아울러 김원룡은 애국계몽기의 잡지를 다수 소장하고 있으며, 아울러 광복 이후 쏟아져나온 잡지와 벽보까지 수집했다고 한다.

좀 각별한 분은 김두종 선생인데, 원래 서양 의학을 공부해 내과의사가 되었다가 다시 한의학을 공부했다. 의사학(醫史學)을 연구하는 한편 전혀 다른 분야인 한국의 활자와 인쇄술을 연구하기도 하여, <한국의학사>와 <한국고인쇄기술사>란 대저를 남기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그의 장서에는 활자·인쇄와 관련한 귀중서가 많았다. <일산당 고활자본 서목(一山堂古活字本書目>이란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김두종 선생이 700여종의 고활자본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법천송증도가(法泉頌證道歌)>가 비록 조선에 와서 복각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저본은 1239년 이전에 제작된 고려 때의 금속활자본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거개 모든 장서가가 국문학자나 사학자이지만, 윤일선만은 성격이 다르다. 의학을 전공해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서울대 총장을 지낸 윤일선의 서재는 동서 양본(洋本), 신간 고판(古版)이 조화되어 있었고, ‘거개가 의서(醫書)라 또한 과학스러운 운치도 나부끼는’ 그런 곳이었던 것이다.

장서가들의 책은 대개 대학과 공공도서관으로 갔다. 이병기·이희승의 장서는 서울대로, 김두종의 장서는 국립중앙도서관과 한독약품으로, 최현배의 장서는 연세대로, 김상기의 장서는 일부 서울대로, 일부 영남대로 갔다. 좋은 책을 모아 연구도 하고 후학들에게도 도움이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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