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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찬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ㆍ정관용씨가 말하는 ‘소통 못하는 한국’
ㆍ“시민·문화·지식사회 힘 키워 정치 권력의 힘 약화시켜야”

점심 메뉴를 놓고 얘기 중인 친구 ㄱ과 ㄴ이 있다. ㄱ이 새로 생긴 중국음식점을 추천하자, ㄴ은 간밤에 술을 마셨으니 설렁탕집에 가자고 맞선다. ㄱ은 중국음식점에 가서 짬뽕을 먹으면 어떻겠느냐고 하지만, ㄴ은 짬뽕으로도 속이 부대낀다며 거부한다. 결국 ㄱ은 설렁탕집에 가는 대신 점심값을 내라고 제안하고, ㄴ이 이에 응해 둘은 설렁탕집으로 향한다. 시사평론가이자 전 KBS <심야토론> 사회자인 정관용씨는 이 예를 생활 속에서 명쾌한 쟁점을 놓고 벌인 토론이라고 말했다. 만일 ‘설렁탕을 먹으려는 버릇을 고쳐놓고 말겠어’라고 마음먹는 사람이 있다면? 정씨는 “그런 사람이 간혹 있지만, 그는 평생 혼자 점심을 먹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람은 ‘소통’이 아니라 ‘소탕’을 원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선 “철저히 무시하기. 비판도 하지 말기”라는 전략을 내세운다.


6월30일 밤, 서울 평창동 희망제작소에서는 정관용씨의 ‘대화마당’이 열렸다. ‘단절의 시대, 더 많은 소통의 조건과 과제’라는 주제를 놓고 열린 자리였다.



그는 독일 철학자 가다머의 “대화란 서로 간의 이해를 넓혀가는 과정”이란 말을 인용했다. 연애할 때 상대방이 좋아하는 일을 먼저 시작하듯이, 대화와 토론에도 상대가 동의할 수 있는 부분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선 왜 이리 소통이 어렵고 토론이 안되는가. 정씨는 모든 대화의 주제가 ‘통역사화’ ‘과잉이념화’돼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짧은 시간 고도의 경제 성장, 격렬한 사회 변화를 겪었기 때문에, 무슨 얘기를 해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현대사 전체를 말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1987년 민주화 이후 언론이 자신의 색깔을 찾은 점은 긍정적이나 ‘사실을 의견처럼 말하고,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기’에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점도 들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씨는 “대안에 대해선 무기력하지만 자꾸만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단 우리 사회의 보수·진보는 앙금이 많지만, 같이 살고 있는 것만은 인정해야 한다. 둘째로, 모든 토론을 구체적인 정책 중심으로 펼쳐야 한다. ‘제네럴리스트’가 아닌 ‘스페셜리스트’가 토론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로, 밟아야 할 순서와 단계를 거쳐 토론해야 한다. 그는 전북 부안에서 핵폐기장 유치를 추진해 큰 갈등을 빚었으나, 이듬해 정부가 주도적으로 의견을 수렴해 결국 경주에 핵폐기장을 유치하게 된 사례를 들었다.

정씨가 보기에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는 ‘적대적 공존관계’다. 중간층을 설득하기 위해 경쟁하는 대신, 양 극단을 욕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유지한다. 중간층을 향해 말하는 온건파의 위치를 강화시키기 위해선 정치 권력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제안했다. 경제 권력이 강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한국에선 대통령이 30대 기업 총수를 한 자리에 불러모으는 일이 가능하다. 시민사회, 문화계, 지식사회의 힘을 강화시키는 것이 정치 권력 약화의 지름길이라는 것이 그의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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