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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기자 nostalgi@kyunghyang.com

ㆍ벼랑에 선 ‘불통 공화국’
ㆍ정부·시민, 여야, 보수·진보 곳곳 ‘내전중’
ㆍ이명박정부 소통지수 28점으로 ‘낙제점’

 


지난해 6월11일 새벽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있었던 ‘100만 촛불대행진’. 시민들의 청와대 방향 진입을 막기 위해 경찰이 대형 컨테이너로 방벽을 쌓자 시민들은 이를 ‘명박산성’으로 명명했다. 이후 명박산성은 소통 부재의 상징이 됐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소통의 부재, 불통 현상이 임계점에 달했다. 폭발직전이다. 정치, 경제, 사회 부문은 물론 지역, 계층, 세대, 언론 등 총체적이다. “대한민국은 불통공화국”이라는 자조섞인 비판도 나돈다. 소통의 목소리는 높은데 소통은 안되는 이 현실은 한국을 ‘위험사회’의 벼랑으로 내몰아간다. 명분과 이념에 집착하고, 갈등과 대립이 일상화된 지 오래다. 그러나 밤이 깊을수록 새벽은 다가오는 법. “소통만이 우리 사회가 살 길”이라는 목소리도 분출하고 있다. 소통을 희구하는 우리 사회의 갈증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한국은 과연 ‘소통으로의 전환’에 성공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은 ‘내전 중’이다. 곳곳에서 적대와 충돌의 굉음이 요란하다. “갈 데까지 가보자”는 대치의 전선은 넓어지고 상생의 접점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인터넷 선진국에 메신저·블로그·트위터 등 ‘소통의 도구’는 쏟아지고 있지만 한국의 현실은 ‘불통’이다.

100점 만점에 30점. 다시 100점 만점에 28점. 서울대 한상진 교수팀이 각각 2006년과 2008년 정부와 국회, 정부와 시민단체, 여당과 야당 등 5개 항목에 걸쳐 집권층의 소통능력을 평가한 결과이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모두 ‘소통지수’가 낙제점이다. 게다가 정권교체 뒤 더 나빠졌다.

한 교수는 지난 6월 중순 한국사회학회 학술대회에서 “정부와 시민단체 사이의 소통이 2006년에 비해 2008년엔 현저히 더 악화되었다”며 “소통지수와 시민적·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질 사이에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2009년 올해는 어떤가.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 변화를 요구한 각계각층의 시국선언을 둘러싼 현실이 상징적이다. 1만여명의 교수·문화예술인·종교인 등이 참여한 시국선언에 정부는 외면하고 있다. 보수층은 “어둠의 세력을 몰아내자”고 되받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 1만7000여명이 시국선언을 하자 ‘주동자 해고, 서명자 전원 징계’의 물리적 통제가 가해진다. 귀를 열고 경청하기보다 불문곡직 처벌의 칼을 빼드는 형국에 대화와 역지사지의 자리는 없다.

용산참사는 발생 5개월이 지나도록 여전히 정부가 피해자 가족을 외면, ‘거리의 대치’가 계속되고 있다. 쌍용자동차 사태 역시 노·노 충돌양상까지 빚으면서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한 채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로 촉발된 촛불민심이 질타했던 소통 부재가 개선되기는커녕 이같이 심화되고 있다.

청와대가 국민소통비서관까지 신설하는 등 ‘소통’에 공을 들이지만 일방적인 라디오 주례연설과 4대강 사업 강행 등 말과 행동이 어긋난다.

한국 정치는 여전히 불통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타협과 생산적 공존은 실종되고 정쟁과 상대에 대한 적의가 여의도를 뒤덮고 있다.

비정규직법 개정과 미디어법 처리를 둘러싼 여야의 가파른 대치는 서로 얼마나 막혀 있는지를 드러내고 있다. 여당의 ‘단독 처리 불사’와 야당의 ‘결사 저지’는 소통하지 못하는 한국 정치의 익숙한 풍경이다.

보수·진보세력의 대립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감정싸움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진보진영 일각에서 이명박 정부를 독재정권으로 규정, 퇴진운동에 돌입하고 우익인사들의 입에선 “DJ(김대중 전 대통령)도 자살하라”는 망언이 나왔다.

꽁꽁 얼어붙은 남북관계와 맞물려 심화되고 있는 남남 갈등도 같은 맥락에 있다. 합리적 목소리는 “수구꼴통” “친북좌파”의 상호 원색적인 비방에 파묻히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적대적 공존’이 국민통합의 발목을 잡고 있는 양상이다. 한국 언론 역시 소통의 도구,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에 대한 사법처리, MBC 에 대한 검찰 기소 등 ‘표현의 자유’와 언론자유에 대한 숨통죄기 또한 불통의 대한민국이 처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해주는 징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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