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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식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공익소송위원장


ㆍ진보의 보수 비판 - 장유식 기고

불행하게도 대한민국 대통령은 ‘불통’의 대명사이다. 보수 전체의 소통부재 역시 대부분 이명박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고 있다. 불통의 원인은 ‘엉터리 실용주의’로부터 비롯된다. 결과만 좋으면 됐지, 무슨 말이 많으냐는 것이다. CEO 출신답게 그냥 밀어붙인다. 말과 생각이 통하는 사람들을 주로 만나면서 ‘나는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고, 우리의 정책은 옳다’는 믿음을 거듭 확인한다.

서민행보를 한다고 하지만, 부자감세를 비롯한 부자와 대기업을 위한 경제정책은 변함이 없다. 이로 인해 기득권은 강화되고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으며, 사회적 약자들의 박탈감은 커져만 간다. 아전인수격인 ‘눈가리고 아웅’도 여전하다. 운하포기를 선언하면서 4대강 살리기(혹은 죽이기) 사업을 하겠다는 식이다.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만 하면 4대강은 대운하가 되고 만다. 그렇지 않고서야 땅을 깊이 파내고 보를 만들어 물을 오염시키는 데 22조원의 혈세를 낭비할 이유가 없다. 최근의 집중호우를 통해서 보더라도 정작 문제인 것은 4대강이 아니라 도시와 지천에서의 물난리가 아니었던가.

인사정책, 인적쇄신에도 실패하고 있다. 집권초기에는 ‘코드에 맞지 않는다고’ 완장차고 목을 쳤다. 정작 그 자리에는 강부자·고소영 라인을 앉혔다. 최근에는 원칙없는 파격인사로 인해 결국 공안통 천성관은 낙마했고, 인권과 무관한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는 논문자기표절의혹에 친일후손논란까지 겹쳐 취임식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법은 표류하고 있고 용산참사의 아픔은 더욱 골이 깊어지고 있는데도 사회적 약자는 여전히 찬밥신세고 ‘불순분자’라는 딱지가 붙어있다. 대통령도 시장도 용산을 찾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보수가 소통에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는 미디어법 강행과 서울광장 폐쇄이다. 아픈 얘기는 듣기 싫어한다. 틈만 나면 표현의 자유를 제약한다. 반대자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질서유지를 명목으로 광장을 폐쇄하며, 공안통치의 강화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면서 법과 질서를 앞세운다. 그러나 소통이 전제되지 않는 한 ‘법과 질서’는 기득권을 가진 자가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 강요했던 ‘언어의 유희’에 불과했다. 보수의 소통, 특히 보수내의 소통조차 방해하는 또 한 가지 요소는 극단주의자들의 ‘색깔 칠하기’이다. 극우보수들은 소통을 지향하는 보수인사들에게조차 빨간색 칠하기에 급급하고, 이들을 움츠리게 만든다.

최근에는 정통보수의 상징처럼 여겨져왔던 박근혜 의원조차 극우보수단체로부터 ‘좌익세력의 세작(간첩)’이라고 공격받았다. 흔히들 좌파의 ‘이념과잉’이 지적되지만, 보수 역시 낡은 이념의 덫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소통부재의 배경이 되고 있다.




“권력 위임해도 권력 원천은 국민이다”

대의민주주의는 ‘선거 때만 국민을 주인으로 대접한다’는 폐단을 낳는다. ‘소통’에 근본적인 한계를 노출한다. 그래서 이제 국민은 더 이상 대의제에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 광장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인터넷을 통한 여론형성을 생활화하고 있다. 대중은 변화하고 있다.

대의(代議)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대신’하는 것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단지 권력의 주인인 국민의 뜻을 ‘대신’할 권한을 위임받았을 뿐이다. 당연하게도 권력을 ‘일상적인 수준’에서 국민에게 되돌리려는 노력을 계속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인증시스템을 통한 온라인 국민투표,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선출직공무원에 대한 국민소환제 등을 도입해야 한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그 필요성과 가능성을 제고한다. 이제 시민들은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다양한 정보를 구하여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고, 과거보다 훨씬 다양하고 폭넓게 소통하고 있다. 사회는 더욱더 수평적이고 평등한 관계로 변화하고 있다. 물론 대의민주주의는 다양한 형태로 대한민국 헌법에 제도화되어 있다.

그러나 대의제는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방법으로서 존재하는 것이지 결코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특히 ‘대의제’를 절대시하면 ‘다수의 횡포’가 발생하기 쉽다.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대통령, 개헌정족수에 육박하는 절대다수 의석을 가진 한나라당, 그리고 원래 보수적 성향이었던 사법부까지 이렇게 3권을 모두 장악하고도 ‘보수’가 여전히 ‘헤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답은 명확하다. 선거에 의해 권력은 위임되지만, 그 권력의 원천은 국민이며 위임의 시기와 형식, 내용은 계속 변화한다. 대의제는 주권자의 직접민주주의적 요구와 끊임없이 충돌하면서 간극이 생길 수밖에 없다. 소통을 통해 그 간극을 메우지 않고서는 수임받은 권력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 보수가 국민의 ‘직접민주주의’의 요구에 주목해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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