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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아이들한테서 어른이 배울 때가 많다. 때론 낯이 화끈거릴 정도로 어른들을 부끄럽게 만들기도 한다.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를 보다가 네 살 먹은 딸이 주인공 강마에를 두고 한 마디 던진다. “저 아저씨는 나쁜 말 한 거 사과해놓고선, 또 나쁜 말 하고, 또 사과하고, 또 나쁜 말하고, 그럼 어떡해. 사과를 했으면 그 담부턴 좋은 말만 해야지.” 말에 상응하는 행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신뢰가 형성될 수 없다. 소통은 귀에 즐거운 말 몇 마디를 통해서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담은 관계의 총체 안에서 비로소 성립된다.
정부와 여당은 계속해서 ‘소통’에 대해 말하고 있다. 지난해 촛불집회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소통에 문제가 있었음을 자성한다고 했고, 한나라당은 ‘국민소통위원회’까지 만들었다. 언론에선 통합과 소통을 주제로 한 특집 프로그램이 유행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반성 뒤에는 곤봉과 처벌이 뒤따랐고, 여당이 말하는 소통은 홍보와 같은 뜻으로 들린다. 듣기 좋은 얘기만 주고받는 TV의 소통 특집은 시청자의 분통만 터뜨리게 할 뿐이다. 불통이다.
불통의 챔피언은 먹통이다. 최악의 불통 언어는 바로 무반응이기 때문이다. “벽에다 말하는 것 같은” 느낌만큼이나 소통의 장벽을 분명히 체감할 수 있는 증거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시대 불통의 상징은 단연 ‘명박산성’이다. 지난해 촛불시위에서 수십만 시민을 가로막은 초대형 컨테이너는 현 정부가 불통 정부라는 것을 다른 어떤 극단적인 불통의 언어보다도 더 강력한 울림으로 전달했다.
현 정부와 여당은 시민사회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불신하고 두려워한다. 그래서 모든 것을 막고 가두려 한다. 광장을 경찰버스로 봉쇄하고, 흐르는 강물을 보로 막고, 인터넷 여론을 각종 죄목으로 틀어막는다. 먹통 정부의 차벽이고, 강벽이고, 법벽이다. 그 벽 너머에 있는 권력자들은 낮은 목소리는 아예 들은 걸로 치지도 않는다. 그래서 국민들은 점점 더 큰 소리로 외쳐야만 하게 됐다. 그러자 비로소 말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바로 파괴와 폭력의 언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불통의 언어는 불통의 원인이 아니다. 그것은 더 큰 불통의 체제, 침묵 속에서 권력의 무기를 휘두르는 권위주의 체제를 반영하고 강화하는 구성요소다.
언어의 폭력성은 단지 얼마나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했는지만을 보고 가늠할 수 없다. 정말 폭력적인 언어는 한 인간, 집단, 혹은 사회세력들의 존엄과 인권을 부정하고 파괴하는 언어, 그런 파괴 행위를 고무하는 언어, 그런 파괴가 구조화되어 있는 사회질서를 정당화하고 심화시키는 언어다. 현 정부와 여당, 보수언론이 내뱉고 퍼뜨리는 폭력적 언어는 무엇일까? 그것은 막힌 곳을 뚫으려 하는 모든 힘, 권력자들에게 항의하는 모든 몸짓과 목소리를 악마화하는 언어다.
불통의 언어는 한때 매우 직설적이기도 했다. 지난해 촛불집회 당시 일부 정부 각료와 보수개신교 지도자들은 국민들의 영(靈)에 ‘악마’ ‘마귀’ ‘사탄’이 들어앉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익숙한 세속적 언어들이 덜 폭력적인 것은 아니다. ‘떼법’ ‘과격분자’ ‘불법폭력’ ‘전문시위꾼’ ‘극렬좌파’ ‘친북세력’ ‘테러리즘’ 등과 같은 통치의 어휘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정당한 기본권 행사를 범죄적이고 위험한 행위로 만들어버린다. 이런 낙인이 단지 시위·파업 등 어떤 ‘행동’을 비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특정 집단의 ‘존재‘ 자체를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삼을 때, 그것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파괴적인 전체주의의 언어가 된다.
폭넓은 정당성을 갖는 큰 정치는 오직 대화와 조정, 포용을 통해 가능해진다. 그래서 정당성의 정치를 포기한 자폐적 권력에 소통은 소음이자 도박일 뿐이며, 따라서 소음을 틀어막는 것은 통치의 제1의 과제가 된다. 바로 그 억압의 정치가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적 정체성, 민주공화국의 근간을 허물고 있다.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국민들에게서 오직 악마와 범죄자, 떼쓰는 아이의 모습밖에 보지 못하는 권력이 민주공화국의 정체(政體)와 오랫동안 공존할 수 있을까? 장기적으로 둘 중 하나가 이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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