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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공직윤리에 둔감·약자 외면… ‘보수적 가치’ 취약
보수세력의 불통 현상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뉴라이트’로 대표되는 보수단체는 정권 교체에 일익을 담당하며 한국 정치·사회의 신주류로 떠오르는 듯했지만 그 위상이 2007 대선 이전 같지는 않다. 현 정권과 동일시되면서 대통령 지지율 등락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고 있을 뿐이다. 합리적 보수 세력은 부상하지 못하고 오히려 보수와 극우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면서 시민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게다가 보수적 가치를 정립하지 못한 채 권위주의에 기대 자리 다툼까지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보수단체들이 자신들의 ‘잃어버린 10년’간 꾸준히 비판했던 진보단체를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보수 단체들은 우선 ‘보수의 가치’에서 취약한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보수의 전통 덕목인 ‘윤리’에 관한 한 보수 단체들이 목소리를 내는 건 찾기 힘든 것도 그 때문이다. 최근 낙마한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각종 의혹이 불거졌을 때 이를 제대로 비판한 보수 단체는 거의 없었다. 물론 보수 단체들이 고위 공직자 의혹 문제에 항상 침묵했던 것은 아니다. 참여정부 때는 엄정한 잣대로 공직자들의 도덕성을 문제삼았다. 2006년 김병준 교육부총리 논문 의혹이 불거졌을 때는 전교조와 한국교총 등 진보·보수 시민단체들이 대부분 성명을 내며 비판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고소영·강부자 내각 논란에 휩싸이며 여러 공직자들의 도덕성이 도마에 올랐지만, 이를 앞서 제때 비판한 보수단체는 없었다. 지난해 촛불집회 당시 ‘바른사회시민회의’만 인사 편중 문제, 도덕성 문제를 지적했을 뿐이다.
잇단 도덕성 의혹과 자리다툼
고위 공직자의 윤리에 무감각한 보수단체들의 태도에서 시민들은 ‘보수는 곧 기득권’으로 받아들인다. 곽정환씨(33)는 “보수적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면서 “돈 많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만 신경 쓰는 게 보수적 가치 아닌가”라고 말했다. 유명숙씨(49·주부)도 “보수진영은 서민들의 생활을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심정을 잘 모른다. 시민들에게 따뜻한 감동을 주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한규씨는 “자신들의 지지세력과 자본가를 위한 입법이 분명한데도 서민과 빈곤계층을 위한 정책이라고 선전,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이런 선전이 적어도 수도권에서는 먹혀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헌 변호사는 “우파 세력을 형성하는, 가진 자들의 문제는 본인들이 일반 국민들로부터 욕을 얻어먹는 잘못된 부분을 고칠 생각을 기본적으로 안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소통 특집기획 설문에서 ‘소통을 위해 보수 진영이 버려야 할 것’으로 지목된 것은 ‘인권 및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부족’이었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는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를 잘살게 하고, 가난한 사람이 없게 할까 하는 고민을 해야 하며, 진보가 주장하는 인권, 사회적 약자 배려도 약간 수용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보수 내부에서도 서민·중산층 회복에 대한 촉구의 목소리가 나온다. 김종석 교수는 “외국에도 자유주의적 우파 보수 정책이 국민들의 정서와 부합해서 성공한 예가 있는데, 대표적인 게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라며 “우파적 가치와 정책 노선도 얼마든지 국민의 기대와 정서에 부응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렇게 표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철환 민생경제정책연구소 이사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을 통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소통은 이념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대선 때 제시한 ‘민생경제’를 살리는 것이 소통의 가장 중요한 아젠다”라며 “오해를 살 만한 정책을 많이 편 데다 이 점에 대한 설명·노력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김용갑 전 의원은 “보수 진영이 남북문제나 대북문제에서는 양보할 것과 안될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지난 정권에서는 무조건 양보하다 보니 결국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며 “그러나 사회 여러 가지 제도나 일반 정책에서 보수가 일방적인 방향으로만 갈 수는 없지 않으냐. 보수정당은 원래 중산층을 50~60%로 키워야 하며 그게 바로 보수정권의 가장 큰 성공”이라고 말했다.
보수의 가치는 경제 문제에서는 ‘시장의 자유’나 ‘재산권 보호’, 이념 문제에서는 ‘친북·좌파’ 낙인찍기에 머물러 있다. 상대 이념을 존중치 않는 극단의 언어를 구사하고, 행동해온 것이다. 이재교 변호사는 상대 진영을 타도 대상으로 여기는 태도에 대해서 “전통적 우파 시민사회단체들은 남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자세가 부족하다”며 “좌파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정책의 차이에 불과한 것을 기본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연결시켜서 낙인찍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극우 단체뿐만 아니라 뉴라이트를 표방하는 단체에서도 친북이나 빨갱이 같은 언어 구사는 곧잘 나온다. 한 대학 교수의 전언은 시사적이다. 그는 “최근 뉴라이트쪽 사람들과 함께 하는 모임이 있었는데, 한 인사가 경향신문, MBC에 간첩이 들어가 있다고 하더라. 심지어는 조선일보에도 간첩이 있다고 말하는 걸 듣고 무척 놀란 적이 있다”고 전했다. 남세현씨(46)는 “한국전쟁이 끝난 지 50년이 지났는데도 보수 세력은 여전히 진보 진영을 ‘좌빨’ ‘친북’ 등으로 매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현준 시대정신 사무국장은 “보수나 진보 양 진영 모두 다른 세력을 배제하면서 진영 논리에만 매몰돼 있다. 또 상대방의 주장이나 주장하는 이유에 대해 정확히 모르고 알려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일단 불순하게 보기 때문에 논의 진행 없이 빨갱이, 친일파 등의 낙인찍기가 판친다”고 말했다. 그는 “선명한 주장과 상대에 대한 공격이 정통성을 갖고 자기 진영을 이끌어나가는 것처럼 생각한다. 소통을 추구하면 기회주의자로 몬다”고 전했다.
민생 회복 외치면서 기득권 수호
‘친북·좌파의 낙인찍기’는 보수의 민족주의는 무엇인가를 되묻게 된다. 공무원 전모씨는 “보수의 가치 중 하나가 민족주의인데, 한국의 보수진영은 민족주의를 말하지 않는다. 친재벌, 근시장, 애자본 아니냐. 일부 국민을 용공세력으로 몰고가려는 행동은 ‘우리가 진정한 꼴보수요’ 하는 행태”라고 말했다.
보수 가치의 부재 상황에서 정부에 대한 감시·비판 기능을 외면한 결과, 친정권 이미지가 굳어지고 있다. 최민정씨(25)는 “뉴라이트는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주장하는 이념적 운동에서 벗어나 무조건 정권을 옹호하는 친위부대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때 홍위병 비난을 듣던 진보진영의 몇몇 단체의 전철을 밟는 모양새다. 정권교체 이후 보수진영이 새로운 혁신 의제를 내놓지 못한 채 퇴보하거나 안주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뉴라이트, 정권 친위부대로 전락
이명박 정부 들어 보수진영 인사들의 입신출세에 대한 잡음도 끊이질 않고 있다. 변철환 상임이사는 “사회 전체보다 개인의 출세·입신에 신경 쓰는 사람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근식 서울시립대 교수는 “진보진영이 10년 동안 권력을 독점했으니 이제 보수세력에게 권력이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다. 욕심이 지나치다”라고 비판했다.
이런 여러 요인으로 인해 정권교체 이후 보수진영의 신뢰는 급격히 떨어졌다. 대표격인 뉴라이트는 중앙일보·동아시아연구소의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파워조직 조사에서 2007년 신뢰도 10위에 올랐지만 다음해 23위로 급락했다. 최재규 자율교육학부모연대 공동대표는 “보수진영이 정권을 잡지 않았을 때는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며 단합도 잘했지만 정권을 잡고 나서는 고압적 자세로 돌아가 밀어붙이기만 한다”며 “지금은 초심으로 돌아갈 때”라고 말했다. 허현준 사무국장은 “지난해 광우병 파동과 올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을 거치면서 국민통합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면서도 “정책에 따라 진보진영과 협력도 하면서 통합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이재국 미디어팀장, 정유미 산업부 기자, 김종목 문화1부 기자, 백승찬 문화2부 기자, 선근형 사회부 기자, 이호준 정치부 기자, 이청솔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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