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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대략 1991년부터 2002년까지를 말합니다. 한때 일본 경제의 고공행진을 가능하게 했던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급락하자 수많은 기업과 은행이 도산했습니다. ‘고이즈미 정권’이 신자유주의를 근간으로 한 고강도 개혁 정책을 실시해 경기가 잠시 살아나는 듯했지만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로 다시 흔들렸고, 작년 3월11일에는 대지진마저 겪으면서 심각한 리더십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10년’은 이제 ‘잃어버린 20년’이 되었다지요.

로버트 기요사키는 <앞으로 10년, 돈의 배반이 시작된다>(흐름출판)에서 세계 경제대국 가운데 첫 번째로 부도가 날 국가는 일본이라네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비율이 가장 높기 때문이라는군요. 2010년의 국가 부채 비율은 일본이 200%, 미국이 58.9%, 영국이 71%였습니다.

4대강 삽질로 일관한 이명박 정권은 작년에만 국가 부채와 공공기관 부채를 약 60조원 이상 크게 늘렸습니다. 정부와 공공기관의 채무는 모두 약 884조원으로 작년 GDP의 71.6%에 달합니다. 우리도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것이 분명합니다. 어디 부채뿐인가요? 저출산으로 말미암은 생산가능 인구의 감소, 소득이 높고 사회적 지위도 안정된 ‘쌍봉세대’의 은퇴, 자산가치 하락, 개인부채 급증 등 일본의 모습을 뒤따라가는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대형서점에 진열된 베스트셀러 책들 l 출처:경향DB

1947~49년에 태어난 전후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團塊) 세대가 은퇴를 앞두었던 시절의 일본에서는 ‘늙음과 죽음’에 대한 우화가 크게 유행했습니다. 1998년에 노인의 건망증과 같은 망각의 힘이야말로 진정한 경쟁력이라고 말한 아카세가와 겐페이의 <노인력>이 최고 유행어로 뽑힌 것이 계기가 된 이후, 아흔 살의 현역 의사인 히노아라 시케아키가 “나이듦이란 노쇠가 아니라 숙성되는 것”이라며 장수사회를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 <생활에 능숙함>과 일흔 살의 이시하라 신타로가 쓴 <나이듦이야말로 인생>이 폭발적으로 팔려나갔습니다.

젊은 시절 치열하게 인생론에 몰두했던 단카이 세대가 노년의 입구에 다다르자 청춘을 회고하며 남은 인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자 하는 욕구가 분출했었지요. 100살을 넘긴 장수자들이 많은 일본에서 이 책들을 인생의 전환점에 선 50대가 많이 읽었다고 합니다. 그즈음 최고로 인기를 끌던 실버잡지인 ‘사라이’는 정치, 경제, 비즈니스, 질병, 금전 등 다섯 주제는 절대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잡지를 읽는 동안만이라도 골치 아픈 이야기는 잊어버리라는 독자에 대한 배려였지요.

‘늙음과 죽음’이 이렇게 시대적 화두가 되는 와중에 40대가 풍요로운 노년을 맞이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책, <40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모든 것> <마흔부터 현명한 삶> <마흔부터의 인생설계 가이드> <40살부터의 새로운 노년학> 등의 40대를 위한 다양한 정보서적들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평균연령이 80살을 넘긴 우리 사회에서도 이제 ‘100세 마케팅’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전환점인 40대를 위한 책들에 대한 관심도 증폭되고 있습니다.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신정근, 21세기북스), <마흔에 읽은 손자병법>(강상구, 흐름출판), <마흔살, 행복한 부자 아빠>(아파테이아, 길벗),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이의수, 한국경제신문) 등의 인기는 40대가 책의 중요한 소비층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로버트 기요사키의 지적처럼 우리는 과거에 “학교 교육, 직업 안정성, 급여, 의료보험, 조기 은퇴 그리고 평생 동안 지속되는 정부 지원과 같은 산업화 시대의 유물에 집착”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정보화 사회입니다. 우리는 과연 새 시대에 맞는 사고를 하고 있나요?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와이즈베리)에서 세계를 주도하는 경제국가 반열에 올라선 한국도 경제의 성공에 부수적으로 증가하는 “각종 불만들을 어떻게 완화할지, 공정한 사회를 어떻게 구축할지, 시장가치가 가족·지역사회·공공성을 훼손하거나 잠식하지 못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만” 미래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정보기술(IT) 혁명이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를 걷고 있는 지금, 우리는 미래를 전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변화가 하도 극심해 부모세대와 자식세대의 가치관은 부챗살처럼 한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일자리, 소득, 집, 연애(결혼), 아이, (미래에 대한)희망이 없는 ‘6무(無) 세대’가 된 젊은이들은 오늘보다 나은 미래를 전혀 기대하지 못하자 무수하게 자살을 꿈꾸고 있습니다.

자신의 앞날을 몰라 헤매다가 40대가 되어서야 겨우 공부를 시작하거나 운이 좋았던 젊은 시절에 모아놓은 자산이나 소비하면서 여생을 이어가려는 부모세대가 자식에게 알려줄 세상을 이겨낼 지혜가 과연 존재할까요?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들이 달아준 카네이션과 건네준 선물에 기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한갓 ‘노예의 학문’으로 전락해버린 각종 스펙을 갖추라고 강요해온 부모들이 그런 기쁨을 누릴 자격이 과연 있을까요? 오히려 고통받는 자식들에게 부채만 잔뜩 물려주고 세상을 이겨낼 힘은 스스로 갖춰보라고밖에 말하지 못하는 것을 반성하며 자식의 가슴에 ‘응원’의 꽃을 달아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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