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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khhan21@hanmail.net


지난 5월 19일 안면도에서는 누동학원의 총동창회가 열렸습니다. 누동학원은 1975년 6월 15일 문을 열어 모두 89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1981년 8월 30일 문을 닫은 중학교 과정의 농촌야학입니다. 제도화된 교육을 비판하며 바람직한 교육의 모델을 제시하려 했던 누동학원을 유신정권은 ‘사설강습소법’을 핑계로 강제 폐교시켰습니다.

저는 6년여 동안 누동학원을 거쳐간 80여명의 교사 중 한 사람입니다. 마지막 학년 9명의 담임이었지요. 마지막 졸업식이 있은 뒤에 한 학생이 저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떠나시는 선생님을 볼 때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이 작은 소녀의 가슴에서 벅차 올랐어요. 선생님, 저는 그때 배움의 힘이 크고 돈의 위력이 큰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어요. 적어도 11월까지는 지탱이 될 거라고 하시던 말씀이 문득문득 생각나고 사람이 진실성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고 가르치시던 생각도 나고….”

이 편지를 보낸 소녀는 이제 48세의 나이로 대학에서 청소년 교육을 공부하는 3학년 학생입니다. 51세의 남편은 대학 교수이면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고, 두 아이도 대학생입니다. 온 가족의 전공이 같은 계열이랍니다.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들어간 뒤 졸업하고,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 다른 졸업생은 지금 박사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그 아이는 제가 가르치는 동안 세 번이나 가출했습니다. 저는 당시 우등상과 개근상을 없앴습니다. 바쁜 농사일에 일손이 없어 허덕이는 부모를 모르쇠하고 학원에 오기가 쉽지 않은 현실에서 그런 상은 아이들을 나쁜 심성의 소유자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지요.

 

서울 서대문구 안산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이 교사와 함께 교문 밖을 나서고 있다. l 출처:경향DB

도시락도 못 싸오던 두 아이가 이번 모임을 이끌었습니다. 제가 자신들의 담임이었다고 저부터 인사를 시키더군요. 저는 50여명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24세의 철없는 사람이 1년 남짓 교사를 했다고 평생 스승으로 여겨주는 경우가 세상 어디에 있나요? 제가 스승이 아니라 여러분이 제 삶의 스승입니다. 제가 ‘학교도서관저널’ 같은 잡지를 3년째 펴내며 세상에 헌신하며 살 힘을 여러분이 제게 주었습니다.” 그날 참석한 다른 교사들도 저와 비슷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들과 헤어지고 저는 이 시대 교사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습니다. <오늘의 교육> 6호(2012년 1~2월)의 특집 ‘교육 불가능 시대, 교사는 가능한가’는 좋은 교사를 꿈꿨던 이들마저도 그냥 공무원으로 만들어 버리는 어두운 현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 특집에서 ‘스승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진 엄기호는 “교사가 학생과 위계적인 관계를 떠나 우정의 관계를 맺는 것이 큰 기쁨이듯이 학생들 또한 교사와 우정을 맺는 것이 배움의 도약을 이루는 큰 전환점이 된다”고 말합니다. “제자의 능동성을 배려하며 진실에 대해 용기를 내게 하는” 교사가 진정한 스승이라고 규정한 엄기호는 “우리 교육 현장에서 스승이 되는 것은 지극히 힘들고 거의 불가능”하다고 진단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교사의 고통은 크겠지요. 한 교사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 딱 한 가지만 포기하면 교사가 정말 괜찮은 직업”이라고 말합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올해 ‘스승의 날’을 맞이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교사 5명 중 4명은 “교직의 만족과 사기가 떨어졌다”고 대답했습니다. <학교의 풍경>(교양인)에서 “학생 안전의 책임을 교사에게 묻는 제도적 안전망이 없는 환경, 힘 있는 학부모들의 교권침해, 수업에 들어와 다과를 들며 수업을 감상하는 이상한 교원평가, 국·영·수 외에는 설 자리가 없는 교육 과정, 학교 밖에서 이미 곪아 터진 문제로 아파하는 학생을 지원하는 체제의 부족함” 등을 질타한 12년차 교사 조영선은 “사랑하는 스승과 제자가 아니라 서로 어깨를 겯는 동지로 거듭나는” 올바른 관계를 꿈꿉니다.

<변방의 사색>(꾸리에)에서 “이제 웬만하면 비정규직, 아니면 청년 실업”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초·중·고 12년에 대학 4년, 모두 16년을 온통 지옥 같은 경쟁으로 내모는 이 경쟁 교육 자체가 의미가 없어진다. 비정규직 산업예비군이 되기 위해 이 미친 경쟁에 뛰어들 이유는 없다”고 외치는 이계삼은 이제 우리가 쓸모없는 것으로 내던진 ‘인문학’과 ‘농업’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26년차 교사 안준철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제자들마저 힘겹게 살아가는 안타까운 현실에 괴로워합니다. <오늘 처음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문학동네)에서 “교권은 학생들을 사랑할 권리”라고 해석한 그는 “교사가 한 아이에 대한 믿음을 버리는 순간 교사로서의 존재 의미는 상당 부분 훼손된다”고 말합니다. 우리 현실은 어떻습니까? 2011년에 하루 209명, 모두 7만6489명의 아이들이 학교를 떠났습니다. 학교에 남은 아이들도 성적만이 살길이라는 아주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구조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이 책들을 읽으며 저는 교사와 학생이야말로 서로가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안준철의 지적대로 모두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사색과 이해”를 하려고 나서는 것이 암담한 교육현실을 극복하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이게 바로 키가 훌쩍 커버려 이제는 친구가 되어버린 누동학원의 제자들이 어깨동무하며 제게 알려준 진실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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