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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환장하겠네. 아니, 멀쩡한 오토바이가 왜 그냥 자빠져요, 자빠지길! 뭐 제 오토바이가 빈혈이라도 걸렸답디까? 뭐 제 오토바이가 영양실조예요? 뭐뭐, 오토바이 바퀴에 쥐라도 났대요? 쟤네들이 발로 툭 찼으니까 넘어간 거 아니에요!

아니, 제가 지금 흥분 안 하게 생겼어요? 경찰 아저씨도 지금 이 아주머니 하시는 말씀 들었잖아요? 자기 아들이 그랬으면 대신 사과를 하고 보상을 해줄 생각을 하셔야지, 오토바이 탓을 하면 어떻게 해요? 오토바이가 말 못한다고, 막 이렇게 오토바이를 몰아붙여도 되는 거예요! 아주머니한텐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저한텐 가족 같은 애라구요! 제가 쟤 이름도 지어줬어요, 바람돌이!

알았어요, 알았어요. 자, 그러니까 잘 들어보세요… 제가 지난달부터 배달 알바를 시작했거든요. 오토바이를 따로 갖고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제가 없는 돈에, 저랑 같이 자취하는 애한테 삼십 만원 빌리고, 저한테 있는 돈 탈탈 털어서 총 칠십 만원에 얘를 중고로 샀단 말이에요. 그러니, 얘가 얼마나 소중하겠어요? 그냥 제 전 재산인 거예요. 통장에 있는 돈이 은행 밖으로 나와서 밖에 서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구요. 그래서 제가 얘를 밖에 세워두면 잠이 잘 안 오고 그랬어요. 제가 사는 자취방이 옛날 모텔을 개조한 원룸 건물이거든요. 거기가 월세가 싸서 엘리베이터도 없어요. 제 방이 거기 반지하인데… 제가 매일 얘를 끌고 층계를 끙끙 거리면서 내려갔어요. 제 방 앞 복도에 세워놔야 맘이 놓여서요. 계단 내려가느라 제 무르팍이 다 까지고 그래도 행여 얘 기스라도 날까 봐 엄청 맘 졸이고, 그랬단 말이에요. 그랬더니 정용이가, 아, 걔는 저랑 같이 자취하는 애인데, 아무튼 정용이가 그래요. 야야, 차라리 네 침대에서 같이 자라, 서로 껴안고 아주 뽀뽀도 하면서… 저도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죠. 자취방 문이 작아서 못 들어오니까 문제지….

네, 네, 본론만 말할게요… 이 배달 일이라는 게요, 몸도 고되지만,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많은 일이거든요. 콜 받아서 픽업한 후 배달 완료하면 한 건당 삼천 원씩 받아요. 평균적으로 한 시간에 세 건 정도 하는데… 얼핏 보면 최저임금보다 많이 버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름값도 많이 나오고, 이런 거 저런 거 다 제하면 그냥 딱 최저임금 버는 거예요. 배달지를 잘 못 찾아서 허탕치는 경우도 많고, 별 거지 같은 걸 다 시키는 사람들 때문에 고생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니까 그날도 제가 무슨 건축사무소 삼층까지 돌솥밥 세 그릇을 배달하고 나오는 길이었거든요. 돌솥밥 같은 건 식당에 가서 사먹으면 좀 좋아요? 거 꼭 사무실에 앉아서 그렇게 엄마가 해준 밥 같은 거 먹어야 하는지… 이건 그냥 돌덩이를 나르는 거잖아요? 돌덩이에 있는 밥을 나르는 거니까… 아무튼 제가 그거 배달하고 났더니 좀 진이 빠지더라구요. 그래서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서 아이스커피 한 잔 사서 나왔더니… 얘네들이… 아주머니 아들하고 걔 친구가… 제 오토바이 위에 앉아서 아주 생난리를 치고 있는 거예요… 아주 무슨 경주마를 탄 거처럼 엉덩이까지 쳐들고….

 

네, 네, 그건 맞아요. 제가 말이 곱게 나가진 않았죠. 가뜩이나 힘도 빠져 있는데, 웬 처음 보는 중삐리 애들이 제 소중한 바람돌이를 괴롭히고 있으니… 그렇다고 뭐 쌍욕을 한 것은 아니고요, 그냥,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들이 어딜 감히… 뭐 그 정도였죠. 제가 진짜 기가 막혔던 건요, 어른이 그러면 무안해서라도 빨리 내려와야 하잖아요? 하, 그런데 이놈들이 저를 빤히 쳐다보면서 잠깐 한 번 앉아본 거예요, 하면서 낄낄거리는 거예요. 그러더니 둘이 한꺼번에 오토바이에서 훌쩍 뛰어내리다가… 그대로 쿵, 도로 쪽으로 넘어진 거예요… 제가 놀라서 바람돌이한테 뛰어갔는데 이미 미러는 박살이 나고 왼쪽 깜빡이도 깨지고… 내가 이놈의 자식들을 하면서 뒤돌아봤더니… 이놈들은 벌써 저만큼 뛰어 도망가고 있고….

제가요, 이놈들 잡으려고 꼬박 이틀을 학교 앞에 서 있었어요. 그거 아세요, 일도 못하고 꼬박 이틀을 서 있었다구요! 우리 바람돌이 정비소에 맡기고… 이놈들 입고 있었던 교복을 제가 봐서 망정이었지, 아니었으면 이쪽 도시 학교 전부 다 뒤졌을 거라구요. 증거요? 네, 그럼요. 내가 그런 말 하실까 봐 편의점에서 미리 CCTV도 다 뽑아왔어요. 그런 거 있으니까 이놈들 잡자마자 파출소로 온 거죠. 제가 뭐 배달한다고, 뭐 그렇게 만만한 사람으로 보이세요? 저도 엄연히 대학 나온 사람이라구요! 이거 이거, 이 화면 보시라구요, 아주머니 아들이 오토바이에서 내려오는 순간 우리 바람돌이 넘어지는 거! 선명하게 보이시죠?

저 이거 그냥 못 넘어가요. 우리 바람돌이 수리비하고 제가 이틀간 일 못하고 공친 거 확실히 보상 안 받으면 오토바이 파손죄로 정식 고소할 거예요. 여기 경찰 아저씨도 있고 하니까… 네…? 얼마요…?

칠, 칠십 만원이요…? 그, 그러니까 칠십 만원으로 합의를 보시자는 거지요…? 뭐… 뭐 그 정도면 되긴 하는데… 우리 바람돌이가 칠십 만원이니까… 네… 네… 그렇게 하면 뭐….

저기 그래도… 애가 사과도 좀 하고… 그래야 앞으로 이런 일도 또 없을 거고… 아니요… 합의는 그렇게 보는 걸로 하는데… 네… 네… 뭐 어쩔 수 없는 거니까요. 아니요… 아무 불만 없어요. 칠십 만원이면… 정용이한테 빚도 갚을 수 있으니까… 네… 그렇게 할게요… 그래도 애는 좀 주의시켜 주시는 게… 아니에요… 애 다칠까 봐서요… 네… 그럼….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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