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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黃玹)은 1910년 조선이 망하자 “이 나라가 그래도 500년 동안 선비를 길렀는데 나라 망한 즈음에 제 목숨을 내놓는 선비가 없다면 말이 안 된다”고 하고는, 죽기 직전 세상을 버리는 마음에 부친 ‘절명시(絶命詩)’ 네 수를 쓰고 자결했다. ‘절명시’ 가운데 한 구절이 이렇다. “가을 등불 아래 천년 역사를 돌아보매, 지식인 노릇 하기가 어렵구나.”

그가 남긴 1864~1910년에 이르는 한 시대의 기록이 저 유명한 <매천야록(梅泉野錄)>이다. 아름다운 시대는 아니어서 여기에 부패의 기록이 한가득이다. <매천야록>에 따르면 조선의 도지사인 관찰사 자리는 10만~20만냥 사이, 괜찮은 지역의 수령은 아무리 싸도 5만냥 아래로 거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경주군수는 35만냥에 거래됐다는 기록도 있다.

1냥이란 어느 정도의 가치일까. 경제의 조건과 규모가 다르므로,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1냥이 곧 4만원 또는 7만원까지 설이 구구하다. 김구 선생은 조선 말기에 쌀 한 말이 1냥이었다는 회고를 남기기도 했다. 환산은 까다롭지만 어마어마한 부패의 속살만큼은 능히 짐작하겠다. 우스운 일은, 한 자리 거래가 완료된 직후에라도 몇천냥을 더 내놓는 자가 있으면 먼저 임명된 자가 쫓겨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부임하던 길에 벼슬 떨어져 집으로 돌아가는 자도 있고, 난생처음 동헌에 앉자마자 파직 통고를 받는 자도 있었다. 어느 고을에서는 1년에 네 번이나 사또를 새로 맞이하느라 백성이고 아전이고 죽을 지경이었단다.

중앙은 또 달랐다. 요직은 어차피 민비와 고종의 주변이 독점한다. 그래도 이름만 그럴듯한 명예직은 품계가 높으면 3만냥, 낮으면 수천냥짜리 매물이 있었다. 여기에 공명첩이라고, 이름을 쓰지 않고 주는 임명장 장사를 관아에서 했다. 실제로 관직에 부임하지 않고도 벼슬 이름만 쓰는 것이다. 오늘날 온 한국인이 양반 되는 데 큰 공을 세운 문서가 공명첩이다. 이것도 남발되니까 이윽고 100냥으로 떨어졌고, 나중에는 담당자한테 술 한잔 사도 발행되었다.

황현은 중앙의 지존, 곧 민비와 고종을 직접 거론했다. <매천야록>에는 이런 일화도 남아 있다. 민비의 겨레붙이 민영환이 고종을 만나 자기 외삼촌의 군수 자리를 하나 달라고 했다. 고종은 흔쾌히 광양군수를 내놓았다. 민영환이 집에 가 자랑하자 그 어미가 대꾸했다. “임금이 한 자리라도 은혜만으로 내린 적 있었니? 무슨 선심을 썼겠느냐? 이 어미가 진작에 5만냥 갔다 줬다.” ‘벼락감투’라는 말, ‘부지깽이까지 따라간다’, 그러니까 해먹으려는 벼슬아치, 수령이 가는 데라면 그 집 부지깽이까지 따라가 공금을 축낸다는 말이 이때 나왔다.

뇌물 바치느라고 제 돈 쓴 자들은 ‘투자금’을 어떻게 회수했을까. 뻔하다. 세금을 횡령하고 백성을 쥐어짰다. 세금을 횡령해서 상납금을 올리면 더 좋은 자리로 간다. 이전의 횡령은 장부상 가짜 기록으로 덮고 떠나면 끝이다. 남은 돈으로는 땅을 사 늘렸다. 부패와 부동산은 나란했다. 황현은 이렇게 말했다. “가로채는 것은 모두 공금이므로 국고는 저절로 새어 나가 텅 비었다. 그러나 임금은 국고를 자신이 받은 공물로 여겨 차거나 줄어드는 것을 상관하지 않았다.” 일본의 차관은 이러느라 빈 국고를 파고든 점도 있다. 백성들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들고 일어났다. 조선 말기의 민요(民擾)는 이런 식이었다. 1년에 몇 번이고 사또가 갈린다. 갈릴 때마다 지역 살림이 거덜난다. 참다 참다 주민이 일어선다. 일시에 온 고을 사람이 관아로 쳐들어가 사또를 번쩍 들어, 고을 경계선 밖으로 내팽개치는 것이다. 당시 법에 민요 주동자는 목을 베 죽이도록 되어 있었다. 목숨을 건 봉기였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코앞이다. 시대가 달라져 지방의회 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선출되는 판이다. 하지만 이들 자리를 중세의 사또쯤으로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의 묵은 생각과 행동이 중앙과 지역에서 스멀거린다. 이들 자리가 조선 시대 관리가 아님을 인식하지 못한 중앙정당의 횡포, 후보의 줄 서기가 차츰 보인다. ‘지식인 노릇 하기가 어렵다’고 외친 선비가 우리더러 지나간 시대를 굽어보며 ‘저, 저, 한심한 놈들, 쯧쯧’ 혀만 차라고 절명 직전까지 한 시대를 쓰고 또 썼을까. 민요(民擾) 같은 중세의 말에, 선거라는 현대의 말을 짐짓 붙이고 부쳐본다. 그들이 구태를 선택했다면 시민은 한결 새로워져야겠다. 2018년 6월13일, 그들이 낡고 낡아 바스러질 만큼 시민이 새로워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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