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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제발 이러지 좀 말아줬으면…’ 하는 순간들을 자주 접한다. 나는 그렇게 느낀 지점을 내 안에 고요히 묻어두지 못한다. 불쾌한 감각을 준 당사자에게 뼈 있는 농담을 하거나, “그건 좀 기분이 나쁜데요”라고 감정을 표현해야 그나마 해소가 된다. 물론 나 역시 타인에게 실수할 수 있음을 안다. 다른 사람도 내게 표현해주면 좋겠다. 재빨리 사과하게.

불쾌한 일이 한국 사회에서 너무 자주 벌어지는 종류의 것이라 느낄 때는 구조적 원인이 무엇일지 고민하며 정책적 상상을 펼치는 글을 쓰기도 한다. 여기에는 내가 사는 사회가 더 밝고 쾌적하게 나아가기를 바라는 아름다운(!) 마음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는 ‘표현하고 요구하는 인물’을 ‘부정적이고 만족을 모르는 인물’이라 등치시키고 멸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 편견이 사실이 아님을 내가 반증하는데. 내가 얼마나 사소한 감각적 만족으로 쉽사리 행복해지고, ‘정신승리’를 잘 하며, 해학적 인간인지 증인이 되어줄 사람이 5명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문제제기하는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날 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아버지의 증언에 따르면 나는 얌전하고 순한 아이였다. 혼자 조용히 책 읽으며 놀 때가 많았고, 말수도 적었다. 수줍어하며 원하는 바도 또렷이 말하지 못했다.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어른들이 내 마음을 후고구려 궁예처럼 관심법이라도 동원해서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내 감정과 상황을 내 입으로 직접 말하지 않으면 오해 받거나 불이익 받을 때가 많다는 것을 수차례 체감하면서 변했다. 가장 강렬한 기억은 초등학교 때의 것이다. 저학년 때, 전염성 질병을 일주일간 앓으며 병원에 입원했다. 당시 학교 방침은 전염성 질병으로 출석하지 못할 때는 학적부에 결석으로 기록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그 기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수업시간에 출석하는 책임감 강한 초등학생이었는데, 졸업 시 개근상은 고사하고 정근상도 타지 못했다. 의아해서 살펴봤더니 일주일간 학교에 출석하지 못한 것이 결석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어쩐지 일주일 지나서 학교에 간 바로 그날, 음악시간에 의아한 일이 있었더랬다. 아이들이 모두 돌아가며 관악기를 불었다. 나는 우물쭈물하다 앞선 애들이 했던 대로 흉내 내봤지만 엉성했고, 담임선생은 듣다 말고 버럭 화를 내며 나를 망신줬다.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 대사는 떠오르지 않는다. 당혹스럽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던 것, 그저 말없이 빨간 얼굴을 숙이고 울음을 참았던 것만 떠오른다. 내가 부재한 동안 진도 나간 부분이 분명했다. 그는 내가 일주일간 그의 수업을 듣지 못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당시 학급에 50명 넘는 아이들이 있었으니 깜빡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 ‘담임’을 이해해야 할까? 혹은 양육자의 탓일까? 이혼한 뒤 자식들과도 연을 끊은, 생물학적 어머니는 그때도 자식에게 ‘헌신적’이었던 편은 아니었다.

이제 와서 그 당시 어른들 탓해봤자 돌이킬 수 없다(음악시간에 “저 일주일간 아파서 병결했는데 전혀 몰랐어요?”라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음을 아쉬워할 뿐이다). 오직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할 뿐. 그 후에도 내 입장을 대변해줄 사람이 곁에 있는 일은 드물었고 나는 내게 닥친 상황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해야 했다.

지금은 내가 순간 느낀 감정이나 생각을 언어로 정리하고 표현하게 됐다. 자기주장을 펼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답답함을 느낄 때도 있다. 조별과제 할 때에는 아무 말도 안 해 놓고 나중에 뒤에서 욕하는 이, 원하는 바를 똑바로 말 안 하며 알아서 눈치 보기를 바랐던 고용주(초등학생 때나 할 법한 짓을 50세 넘어서도 하다니!) 등. 그러다 모난 돌이 정 맞는 집단주의 문화, 대안 없는 비판은 하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한국의 문화를 상기한다. 한국 사회에서 ‘자기 할 말 하며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 드물 수밖에 없음을. 지금의 문화는 문제를 발견하고 발언하는 이를 좀 더 존중하고 이야기를 경청하는 ‘어른들’의 실천에서부터 변화할 것임을.

물론 나는 앞으로도 누가 ‘별일도 아닌데 예민하게 지랄하네’라며 흘겨보거나 말거나 문제를 제기하고 더 나은 사회를 요구하는 삶을 살겠지만.

최서윤 아마추어 창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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