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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직설

숨구멍

opinionX 2017. 8. 1. 10:51

8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입원해 있었다. 오른팔의 팔꿈치 관절을 심하게 다쳐 재활치료도 오랫동안 받았다.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큰 문제는 없지만, 가끔 내가 팔을 다쳤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깨달을 때가 있다. 

이를테면 탁구를 치거나 택시에서 내리며 거스름돈을 받을 때. 팔을 다 뻗어도 직선이 되지 않아 탁구공이 라켓의 중심에 맞지 않는 일이 잦다. 손목 관절 또한 잘 돌아가지 않아 동전들이 바닥에 쏟아지기 일쑤다. 그때마다 형언할 수 없는 상실감이 엄습한다. 내 마음이 내 몸을 받아들이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8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커다란 구멍 하나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 구멍에 몸을 던져도 과거의 건강한 나로 돌아갈 수는 없다.

얼마 전, 도수치료를 받을 기회가 있었다. 올해 들어 무리를 했는지 몸에서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목과 어깨가 늘 뻣뻣했고 여러 차례 수술을 받은 오른팔이 종종 아팠다. 숙면을 취하고 일어나도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신체 리듬이 무너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의료용 침대 위에 누웠다. 선생님이 양손으로 내 온몸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그것을 단순히 만진다거나 주무른다고 표현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오히려 흐트러진 몸과 마음을 바로잡는 몸짓이었다. 도수(徒手)는 맨손이라는 뜻이다. 나는 선생님의 맨손에 의지한 채 한동안 가만있었다. 손의 움직임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아!” 치료를 받다가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선생님이 내 오른쪽 어깨에 손을 올렸을 때였다. 일상생활을 하는 데 지장이 없다고 했지만, 나는 늘 오른쪽 팔다리 및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다닌 모양이었다. “오른쪽이 완전히 경직되어 있어요. 벽돌처럼 단단하네요.” 평소의 나라면 “근육이라 그래요”라고 실없는 농담을 던졌을 테지만, 당시에는 압도적인 아픔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사색이 된 내 얼굴을 보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숨을 쉬어요. 숨에 집중해요.” 순간, 예전에 재활치료를 받을 때 선생님이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호흡에 집중해요. 한결 나을 거예요.” 8년 전의 나를 떠올리며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참을 수 없던 아픔이 참을 만하다가 부러 참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까지 다다랐다.

“어때요, 숨구멍이 좀 트이죠?” 선생님이 한층 편안해진 내 얼굴을 보며 말씀하셨다. 그제야 웃음이 나왔다. 도수치료를 받은 다음날, 몸살을 앓았다. 기분 좋은 몸살이었다. 흐트러진 몸의 리듬이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종종 호흡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는 늘 숨을 쉬지만 숨 쉬는 데 집중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살기 위해서 호흡을 하지만, 나도 모르게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잊고 사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호흡이 절실한 때는, 호흡이 빛을 발하는 때는 어떤 고비를 맞이했을 때다. 고통을 참고 견디는 데 호흡법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음이 요동할 때 왜 심호흡을 하는지, 호흡하는 데 집중을 하면 왜 잡념이 사라지는지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호흡에도 길이와 부피, 그리고 깊이가 있다.

졸시 ‘미완’에서 나는 이런 문장을 썼었다. “몸이 무너지면 마음이 무너지지 (…) 마음이 무너지면 덩달아 몸도 무너지지.” 몸과 마음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그동안 나는 내 몸에 너무 무심했었다. 애면글면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숨가쁜 날들이 이어졌다. 숨을 쉬면서도 한 번도 숨을 쉴 때 집중한 적이 없었다. 호흡은 들숨과 날숨으로 구성되는 것인데, 내 호흡에는 들숨만 있었다. 들이쉬는 데 열중한 나머지, 내쉬는 일에는 소홀했었다. 숨구멍이 트일 겨를이 없었다. 한숨만 늘었다.

한숨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것은 두 번째 뜻으로, “근심이나 설움이 있을 때, 또는 긴장하였다가 안도할 때 길게 몰아서 내쉬는 숨”을 뜻한다. 첫 번째 뜻은 “숨을 한 번 쉴 동안”이란 뜻이다. 

한숨을 소중히 여겨야 역설적으로 한숨을 내쉬는 일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숨구멍이 더 많이, 더 자주 트일 것이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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