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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직설

‘아재’들에게

opinionX 2017. 8. 4. 09:50

얼마 전 대리운전 콜을 한 50대 남성 셋은 나에게 “여기 룸살롱 좋은 데 없어?” 하고 물었다. 잘 모르겠다고 답하자, 그들은 아니 뭐 대리기사가 그런 것도 모르나, 하며 웃었다. 하긴 내가 유흥업소에 손님으로 가본 일이 없는 것과는 별개로 직업상 “어디를 많이 찾으시더군요” 하는 조언 정도를 해 줄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민망했다. 차에 오른 그들은 한참 골프와 유흥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갑자기 나의 성실성에 대해 칭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대리운전까지 하는 젊은이들이 흔치 않다는 것이었다. 직원으로 채용하고 싶다고, 그리고 팁을 좀 주어야겠다고 목소리들을 높여서, 나는 적당히 설레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그들은 트렁크에서 골프 가방을 챙겼다. 나에게 정해진 비용만을 정확히 지불하고 “잘 가요, 파이팅!” 하고는 멀어져 갔다.

운전하는 나를 대하는 50대 한국 남성들의 태도는,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큰 틀에서는 거의 비슷하다. 거의 예외 없이 (1)나에게 열심히 산다는 칭찬, 혹은 걱정을 가볍게 건네지만, (2)곧 자신은 더 열심히 살았다는 자기 서사를 시작한다. (3)그에 더해, 사실 젊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노력’을 하지 않고 있으며, (4)세상에 공짜밥은 없다고, (5)그러니까 당신도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당부하고는, (6)이런 이야기 어디 가서 못 들으니 오히려 내가 당신에게 돈을 받아야겠다는 가벼운 유머·개그를 던지고, (7)내가 이런 이야기 해줘서 좋았지, 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나열한 7가지 각 항목을 순서대로 모두 거치는 이들도 있고, 몇 가지는 건너뛰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자신보다 젊은 타인에 대한 걱정, 질책, 당부와 함께 자신의 서사를 긴 시간 이어 나간다.

나는 운전하는 동안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정확히는, 대화라기보다는 답을 정해두고 하는 일방적인 전달과 강요다. 그들 앞에서 나는 노력하지 않는 세대의 대표가 되고, 그들은 스스로 노력한 세대의 대표가 된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자랑과 과시, 타인에 대한 걱정과 무시로 이어진다. 나는 그들의 기분이 상할까 걱정되어서, 혹은 어떠한 폭력을 불러올까 두려워서 웃으며 수긍하는 것이 고작이다. “네, 맞습니다” 하는 대답과 동의가 필요하고, 가끔은 “대단하십니다” 하는 찬사까지 보낸다. 애초에 타인의 운전석에서 하는 발화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작 그런 이들일수록 자신의 지갑을 여는 일은 더욱 없다. 정해진 금액만을 건네거나 아니면 비용을 깎으려는 시도를 한다. 나는 “아니 사장님, 그렇게 돈이 많다고 자랑하시더니 대리비 1000원을 왜 깎으려고 하십니까?” 하고 묻고 싶은 심정이 된다. 물론 내가 한 노동 이상의 대가를 바라지는 않는다. 우리들도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누고 그에 대한 비용을 요구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어느 한편의 자기만족을 위한 발화를 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족이나 이해 당사자가 아닌, 특히 노동의 사용자와 이용자로 만난 관계에서는 더욱 상호 예의를 갖춘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나에게는(타인에게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의무가 없다.

우리 일상에서도 대화 상대를 타인의 운전석으로 몰아넣고, 자신의 이야기만을 하는 이들이 있다. 직위가 높아서, 나이가 많아서, 아니면 남성이어서 그래도 된다고 여긴다. “나이를 먹을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 하는 격언이 있지만, 우리는 반대로 입은 열고 지갑은 닫는다. 내가 아는 50대 K는 대리운전을 이용할 때마다 기사에게 말이 많아진다고 나에게 고백했다. “선생님, 그러시면 안돼요…”라고 하자, 그는 “내릴 때 되면 저도 후회해요. 대신 재미없는 제 말 들어줘서 고맙다고 팁을 좀 드려요” 하며 웃었다. 그는 자기만족을 위한 발화가 상대방에게 얼마나 재미없게 다가가는지를 알고, 지갑을 여는 것으로 그에 대한 보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러면 됐죠, 뭐” 하고 함께 웃었다. 나는 오늘도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아재’들을 보며, 그가 많이 외로운가보다,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이 지갑을 열기보다는 자신의 귀를 열기를 더욱 바란다.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의 처지에서 사유하는 연습을 한다면, 상대방에게는 그것이 가장 큰 보상이 된다. 굳이 지갑을 열지 않아도 어디에서든 환영받는 존재가 되는 방법이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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