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얼마 전 내셔널지오그래픽 TV에서 ‘이슬람국가(IS)’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시리아 내전이 어떻게 촉발되었고 이후 어떻게 전개되었는지에 대한 현장보고였다. 철저히 미국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영상이지만 사태의 진행과정을 이해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전쟁의 참혹함이야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시리아 내전만큼 처절하고 복잡한 내전은 유례가 드물다. 시리아 내전은 2011년 ‘아랍의 봄’에서 촉발되었다고 한다. 한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이 벽에다 ‘독재자 물러가라’고 낙서를 한 것이 빌미가 되었다는데 그것은 아마도 극적인 뉴스를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기자들의 작품일 가능성이 많다. 사건을 조작했다는 것이 아니라 특정 일화를 끄집어내어 기승전결을 가진 사건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아랍의 봄’ 자체가 미국이 뒤에서 사주한 음모라는 견해도 있다. 어느 쪽이 원인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내전이 장기화하면서 엄청나게 다양한 투쟁 주체들이 생겨났고 이를 후원하는 외부세력 또한 그만큼 많아졌다는 것이다. 피아 구별이 안될 정도로 복잡한 전쟁마당은 결국 미국과 러시아의 힘겨루기 사이에 ‘이슬람국가’가 끼여 있는 구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 내전으로 인해 지난 6년 동안 시리아 인구의 절반이 ‘난민’으로 전락했고 50만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집안싸움을 해결하려고 외세를 끌어들였는데 집이 그만 거덜나고 만 것이다.

 

타산지석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시리아 내전을 보며 다음 같은 공식을 이끌어낼 수 있다. 첫째, 먹이가 있는 곳에 내부 갈등이 있으면 반드시 이를 이용하려는 외부세력이 존재한다. 둘째, 내부 갈등의 수준이 높을수록 외세가 이를 이용하기 쉬워진다. 셋째, 외세를 한번 끌어들이면 혹독한 대가를 치르지 않는 한 이를 다시 물리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넷째, 외세가 많이 개입할수록 내부 갈등은 더욱 깊어진다. 다섯째, 어느 한 외세가 압도적이지 않는 한 갈등은 결코 해소되지 않는다. 여섯째, 폭력적 갈등의 시간이 길어져 더 이상 투자에 대한 이익이 나올 수 없음이 확실해질 때에야 갈등 봉합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불행하게도 지금 한국은 이러한 공식이 적용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땅이 되어가고 있다. 일단 남한 내부의 갈등과 남북 간의 갈등이 한국전쟁 이후 최고 수준에 올라있다.

시리아 내전이 휴전을 모색하고 있는 사이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뜨거운 곳은 단연 한반도이다. 북한이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장거리 핵미사일 때문이다. 이에 대해 남한이 독자적으로 핵을 가지거나 미국의 전술핵을 들여와야 한다는 주장이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제멋대로 전쟁 시나리오를 써대고 있지만 핵전쟁의 예측만큼 불확실한 것도 없다. 아직까지 인류는 핵을 가지고 싸워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는 패배가 확실한 상태에서 종지부를 찍는 의미로 핵폭탄을 썼을 뿐 핵전쟁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핵전쟁이 벌어지면 초장에 전쟁이 끝날 것으로 예측하지만, 내가 보기엔 절대 그렇지 않다. 핵폭탄으로도 잠재울 수 없는 내부 갈등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남한 땅에는 1000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호남과 영남의 지역갈등이 있고, 100년 권세를 누리고 있는 친일파 문제와 70년 된 분단 갈등이 있다. 전쟁이 벌어지면 남쪽은 우파와 좌파, 자주파로 나누어진 위에 지역 및 종교 간 갈등이 더해지고 여기에 외세까지 개입하여 매우 복잡한 분파가 만들어질 것이다. 북한 역시 일당독재라지만 드러나지 않은 다양한 분파들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시리아도 처음엔 독재자 ‘바사르 알 아사드’에 대항하는 반독재 세력만 있었으나 외세가 개입하면서 수많은 분파들이 생겨나 나중엔 누가 누구를 반대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만약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지난 전쟁과 집회·시위에서 보여준 한국인의 기질로 보아 시리아 내전의 잔인함 정도는 애들 장난으로 여겨질 것이다.

이런 추측을 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다. 전쟁을 준비하고 예상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전쟁이 누구에게 이익이 가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만약 전쟁이 가까워졌다면 지난 70년간 누려왔던 분단에 의한 이익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과 ‘FTA 재협상’ 카드를 동시에 꺼낸 것은 전쟁을 해야 할 만큼 경제가 어려워졌다는 고백이다. 북이 핵미사일에 집착하는 것도 북의 경제가 재래식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안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 판단이 옳다면 전쟁을 피하는 해법은 나와 있는 셈이다. 미국과 북한이 상호불가침조약(북·미 평화협정)을 맺고 그 대신 북은 핵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 경우 미국은 북·미 대결에서 얻는 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에 남한은 그에 대한 보상으로 FTA에서 미국에 대폭 양보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 그림은 전쟁을 피하기는 하지만 남한 민중의 희생이 너무도 큰 데다 대미 종속이 더욱 심화되고 만다. 그래도 이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핵을 가진 북과 어떤 의미있는 대화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다면 남한의 ‘멕시코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겠지만 이는 비핵국가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촉발하는 압박요인이 될 것이다.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전쟁불사론’이나 ‘핵무장론’ 같은 무책임한 발언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다시 말하지만 한반도의 전쟁은 지금까지 인류가 겪은 모든 전쟁을 뛰어넘는 참혹한 전쟁이 될 것이다. 한국은 FTA를 미끼로 미국으로 하여금 북과 평화협정을 맺도록 유도해야 한다. 미국과의 불리한 경제협정이 국내 정치의 불안요소가 되겠지만 이는 중국과 북한, 러시아와의 경제교류를 통해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황대권 | 생명평화마을 대표>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