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부-(5) 금융자본의 위험한 게임 (上) 파생상품-금융수학 논리와 허점
송윤경기자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신용도가 낮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대출상품이다. 이들의 빚을 가지고 만든 금융상품이 위험하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하지만 월가의 ‘금융공학’은 상식을 뒤집어줄 만큼의 힘이 있었다. 금융회사는 금융공학을 통해서라면 미래에 닥칠 위험을 측정해 가격을 매겨 팔 수 있었다고 믿었다. 미래 손실도 예측할 수 있다고 자부했다.






“우리 모델은 손실 없이 돈 벌 수 있다.”
“우리의 모델은 매우 안전합니다. 모델에 기반하지 않는 어떤 거래도 승인하지 않습니다.”


지난해 12월 AIG의 CEO 마틴 설리번이 투자자들에게 한 말이다. ‘모델’이란 금융공학자 게리 고튼이 설계한 수학모형을 말한다. AIG는 이 모형을 통해 손해 보지 않을 만큼만 신용부도스와프(CDS·파생상품의 일종)를 팔았다고 자부해 왔다. 일부 경영진은 “고튼 모델이면 손실 없이 돈을 벌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4000억달러 규모의 CDS를 팔았던 AIG는 천문학적인 손실에 시달리다 지난 9월 정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지금까지 미국 정부는 AIG에 1500억달러를 쏟아부었다. 믿고 있던 ‘수학모델’에 발등을 찍힌 곳은 AIG뿐만이 아니었다.



“AAA 등급의 가격이 1% 이상 떨어질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어떤 부도 위험도 없는데 자산 가격이 20% 떨어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미국의 한 투자은행 위험관리 담당자는 지난 8월 ‘이코노미스트’에 이렇게 고백했다. “매우 낮은 위험의 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줄 알았는데, 모두 고위험자산이었음이 판명됐습니다.”



스위스금융그룹(UBS)의 사례도 비슷하다. 이 은행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생상품 중 AAA 등급을 주로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와 올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생상품으로 인해 380억달러를 날렸다. 이 중 75%가 AAA 등급 파생상품으로 인한 손실이었다.



금융공학은 어떻게 위험한 재료(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안전한 자산(파생상품)을 만들 수 있었을까. 파생상품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몇 단계로 나뉜다.



먼저 은행이 주택담보대출을 하면 ‘대출채권’이 생긴다. 이 채권은 은행이 원리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권리다. 투자은행 등은 은행으로부터 이런 대출채권 수 천개를 사들여 이를 담보로 하나의 증서를 만든 뒤 다시 잘게 쪼개 판다. 이것이 모기지 담보채권(MBS)이다.



MBS에는 위험분산효과가 있는데, 이런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각각의 컵에 얼마나 채워졌는지 알 수 없는 자판기 커피 1000잔을 하나의 양동이 속에 모두 붓는다. 그리고 양동이에 든 커피를 다시 더 큰 컵 100잔으로 나누어 붓는다. 만일 자판기가 고장나 처음의 1000잔 중 50잔이 빈 것이라고 해도 그 ‘손실’은 100잔에 고루 퍼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같은 위험분산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처음의 커피 1000잔에 얼마나 채워졌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투자를 꺼리게 된다. 따라서 처음의 커피 1000잔에 커피가 어느 정도로 채워졌는지 안다면 투자 결정에 도움이 된다. 이런 상황을 알려주는 것이 신용등급이다.



이 등급을 매길 때도 수학이 동원된다. 돈을 빌려간 사람들의 소득, 지역, 주택유형, 주택가격, 시중금리, 주택경매 시 받을 수 있는 가격 등 각종 요소들을 수학모델에 따라 컴퓨터에 입력하면 ‘얼마나, 어느 정도의 확률로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지’ 확률 분포가 나온다. 이는 과거기록을 토대로 한 수치다.



신용평가회사 또한 ‘과거기록’과 ‘확률’에 의해 파생상품을 검증하고 등급을 매긴다. 무디스의 자산담보부 책임자인 클레어 로빈슨은 “우리의 전문분야는 통계”라면서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과거의 실적을 기반으로 1000명 중 몇 %가 대출금을 갚을지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뉴욕타임스, 로저 로웬스타인, 4월27일자)




CDO는 여러가지를 섞은 소시지 증권


MBS란 파생상품은 다른 파생상품을 낳을 수 있다. 다른 종류의 채권까지 함께 섞은 뒤 잘게 쪼갠 부채담보부 증권(CDO)이 그것이다. 전남대 이채언 교수는 “신용카드채권, 자동차채권 등은 일반 소비자의 경기까지 고려하므로 좀더 나은 등급의 평가를 받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고 지적한다.



CDO는 ‘소시지 증권’으로 불린다. 맛없는 고기라도 당근이나 양파를 섞어 맛깔나는 소시지로 탈바꿈시킨 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별칭이다. CDO 상품은 여러 종류의 상품으로 재가공할 수 있다. 1000잔의 커피를 양동이에 부었다가 다시 100잔으로 나눌 때, 커피를 동시에 고루 나누는 것이 아니라 차등을 두면 된다. 종이컵을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아서 커피를 부으면 맨 윗줄의 컵이 모두 채워지고 넘치면 아랫줄의 컵이 채워지는 식이다.


만약 자판기가 고장나 처음의 1000잔 중 10잔이 비어있었다면 피라미드의 100잔 가운데 가장 아랫줄에서 1잔은 완전히 비게 될 것이다. 거꾸로 처음의 1000잔 중 900잔이 비었더라도, 맨 윗줄의 10잔은 가득 채울 수 있으므로 안전하다. 이런 원리로 위험을 맨 아랫줄의 종이컵에 몰리게 한다.


만약 나누기 전의 CDO가 BBB 등급이었다고 해도 피라미드 상의 선순위(윗자리) 상품으로만 묶으면 AAA 등급을 받게 된다. 대신 선순위 상품은 값이 비싸고 수익도 작다. 후순위 상품은 값이 싸고 그만큼 수익도 크다. 이러한 과정이 모두 고도의 수학적 계산을 통해 이루어진다.



파생상품은 같은 재료를 가지고 반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앞서 커피가 채워진 종이컵 피라미드 중에서 가운데 세 줄의 종이컵들만 빼낸다. 이 종이컵에 들어있는 커피를 다시 양동이에 부은 다음, 이번엔 다른 종류의 종이컵 피라미드에 따른다. 이것이 CDO2이다. 같은 방식으로 CDO3도 만들 수 있다.



눈앞의 이익 좇아 무리수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생상품은 높은 수익률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2006년 미국에 들어온 자금의 60%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생상품에 몰렸을 정도다. 모건스탠리에 의하면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만든 CDO의 판매금액은 2003년 990억달러에서 2006년 5000억달러로 뛰었다.



수요가 많으면 공급도 늘어나는 법. 월가는 ‘눈앞의 이익’을 위해 기초자산(대출채권)의 안정성을 흔들었다. 파생상품의 기초재료인 대출채권을 늘리기 위해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대출을 해 준 것이다. 태풍의 씨앗이 자라나고 있었다.


게다가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자 CDO2, CDO3, 합성CDO 등 각종 변종 상품을 만들어 팔았다. 한국의 한 금융공학자의 표현대로 “금융수학이 현실에 맞게 제대로 계산하고 있는지 확인할 틈도 없이 계산은 계속됐다.”



신용평가회사 피치의 자회사인 한국기업평가의 한 관계자는 “1차 유동화 파생상품(MBS)의 경우 기초자산인 대출채권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어서 투자자가 수학계산 결과에만 의존하지 않고 복합적 판단을 할 수 있었지만 2, 3차 파생상품의 경우 오로지 수학계산 결과에만 의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용평가회사도 이 게임의 당사자이다. 신용평가회사는 투자은행의 파생상품 ‘제조과정’을 검증한 다음 등급을 매긴다. 말하자면 금융감독기능을 갖고 있는 사기업들이다.



그런데 투자은행이 발행한 CDO 대부분이 최상위 등급인 AAA를 받았다. 신용평가회사들은 파생상품 발행자로부터 평가비를 받는데 이 금액은 높은 등급이 매겨질수록 오른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이 붐일 때 2002년부터 2006년까지 무디스의 수익은 거의 3배가 됐다. 국내의 한 신용평가회사 관계자는 “신용평가사는 ‘최종거래’가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평가를 해야만 돈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무디스, 피치, S&P 등 미 신용평가회사 3사는 불공정한 등급산정 문제로 기소된 상태다.



컴퓨터가 말해주는 ‘부실 가능성’



대출채권을 담보로 만든 파생상품의 거래가 늘면서 덩달아 늘어난 것이 CDS다. ‘당신이 갖고 있는 CDO, MBS 등의 파생상품이 부실화되면 원금을 모두 보상해줄 테니 대신 정기적으로 일정한 보험료를 달라’는 게 이 파생상품의 핵심 개념이다.



이 상품을 판 회사는 ‘보험’의 대상이 되는 파생상품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경우 앉아서 보험료를 번다. 그렇지만 보험대상이 된 CDO, MBS 등에 문제가 생기면 원금을 다 보상해줘야 하니 매우 위험하다. 그러나 보험 대상 파생상품이 부실화할 가능성만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면 돈 버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이 부실화 가능성을 알려주는 ‘수학모델’의 하나가 바로 AIG의 게리 고튼이 고안한 모델이다. 그는 과거의 방대한 기록으로 AIG가 유사시 보험액을 지급키로 한 CDO, MBS 등의 부도가능성을 확률적으로 분석했다.



CDS를 판매하는 투자은행은 수학모델을 이런 방식으로 활용한다. 돈을 빌려간 이들의 각종 정보를 바탕으로 수학계산을 거쳐 부도가능성에 관한 확률을 따진다. 이때에도 손실액은 극단적으로 크되, 현실화될 가능성이 낮은 쪽은 제쳐둔다. 주로 예상 손실액의 평균이 기준이 된다. 이 기준으로 따져서 예상손실액이 작거나, AIG가 받는 보험료로 이익을 남길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 계약을 체결한다.



현재 미국 금융기관이 발행한 CDS가 보장하는 채권은 62조달러에 이른다. 신용평가회사 피치에 따르면 2002년 CDS가 보장한 채권 가운데 부실화한 것은 10.7%였지만 2007년 7월 현재 40%를 웃돈다.




과거기록에 의존한 미래 예측의 결함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생상품이 인기를 얻었던 것은 미래의 위험을 측정해 떼어 버리거나 적절한 값을 매겨 팔아버릴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위험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을 때만 통하는 얘기다. 대표적인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가 등급을 매겼던 파생상품들의 시장 가치는 반 이상 폭락했다. 이미 신용평가회사 3사는 지난해 여름 수백억달러어치의 CDO 등급을 떨어뜨렸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먼저 과거기록에 근거한 확률계산의 한계를 들 수 있다. 금융공학의 수학모델은 그 자체로는 복잡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유사한 조건을 가진 과거기록을 통해 미래를 예측한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은 2002년 3.4%에서 2006년 13.7%로 커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이 이렇게 커진 것은 처음이다. 시장이 이같이 커지면 상환불능 가능성도 높아지지만, 예측 모델은 이런 상황이 반영되지 않은 과거 기록으로 현재와 미래를 예측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미국 투자컨설턴트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지금의 상황을 ‘극단의 왕국’에 비유한다. 그는 ‘전문가가 계산한 확률 바깥에 존재하는,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았던 사건’을 무시할 때의 위험을 경고한 책 <블랙스완>의 저자다.



그는 “대사건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 ‘평범의 왕국’에서는 과거의 경험에 의존한 판단이 법칙을 구성한다”며 “그러나 ‘평범의 왕국’에서 통하던 것이 ‘극단의 왕국’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흰 백조’밖에 없다고 믿는 세상에서 나온 경험치로 아무리 계산을 해 봐야 ‘검은 백조’가 등장했을 때의 경험을 미리 예측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금융공학은 ‘주술’과 같았다. 금융공학은 이성적 사고의 결과였지만, 이 무기를 쥔 월가의 탐욕은 비이성적이었기 때문이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