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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4) 금융위기에 접속된 나
김재중기자



ㆍ노르웨이 나르비크에 무슨일이



1만8000여명이 사는 노르웨이의 작은 항구도시 나르비크. 나르비크는 지난 9월8일 노르웨이 최대은행 DnB에 지고 있는 빚 5200만 크로네(현재 환율로 약 107억원)를 갚지 못하겠다고 발표했다. DnB은행은 즉각 반발하며 법정에서 문제를 해결하자고 맞섰다.




북극권(북극 주변의 북위 66도 33분 지점을 빙 둘러 이은 선. 이 지점에선 하지에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고, 동지에 하루 종일 해가 뜨지 않음)보다 200여㎞ 북쪽에 자리잡고 있어 겨울이면 신비로운 오로라(북극광)를 볼 수 있는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마을 사람들이 지난해부터 경험하고 있는 일들은 금융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거품과 파생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금융기관, 고수익이라는 달콤한 꼬임에 넘어간 순박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블랙 코미디에 다름 아니다. 이 사태 역시 겨울철 온도가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나르비크가 온화한 기후의 전혀 다른 먼 곳인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연결된 결과였다.

나르비크는 지난 2001년 주요 수입원인 수력발전소에서 향후 들어올 수익금을 담보로 은행에서 자금을 빌렸다. 노르웨이 테라증권이 소개한 펀드에 투자하기 위해서였다. 투자금 가운데는 공무원들에게 월급을 지급하기 위해 따로 떼어놓은 돈도 일부 포함돼 있었다. 이 펀드는 미국의 거대 금융회사인 씨티은행이 고안한 것이라고 했다. 나르비크가 투자한 금액은 총 5200만 크로네. 나르비크 1년 예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지난해 여름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이따금씩 1~2%의 수익금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불거지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테라증권 측에서 투자금의 55%나 손실됐다고 통지한 것이다.


여러 지자체에서 비슷한 사태가 벌어지자 진상조사에 나섰던 노르웨이 금융당국 역시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 테라증권이 안전하다고 다짐했던 상품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기반으로 파생된 부채담보부증권(CDO)이었다. 구조 자체가 극도로 복잡하고 위험성도 매우 높은 상품이었다. 더구나 상품설명서에는 여러가지 복잡한 옵션들이 부대조건으로 달려 있어 최악의 경우 투자한 만큼 돈을 더 물어줘야 하는 구조였다.


조사 결과 테라증권이 각 도시에 상품설명서를 보내면서 씨티은행의 상품설명서가 기술한 위험성을 고의적으로 뺀 사실이 밝혀졌고, 테라증권은 지난해 11월 영업허가가 취소됐다. 테라증권은 다음날 파산했다.



테라증권의 파산으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씨티은행은 자신들에겐 책임이 없다며 일찌감치 발을 뺐고, 노르웨이 정부도 구제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미래’를 담보로 이뤄진 투자가 한순간에 휴지로 변한 대신 은행에서 빌린 돈은 고스란히 남았다.



외신들은 이번 사태가 시 예산에 악영향을 미쳐 공공서비스 위축을 가져오고 있다고 전한다. 나르비크의 시의원인 토르게이르 트랠달은 지난 6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소방서, 의료, 학교, 노인복지, 청소년 클럽 등 문화 및 복지예산 축소가 불가피하다”면서 “사람들은 미국에서 벌어진 위기가 어떻게 이런 결과를 가져왔는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화를 입은 소도시는 나르비크뿐 아니다. 하트피엘달·라나·헴네스 등 8곳에 이른다. 이 소도시들은 ‘테라스캔들’로 명명된 이번 사태의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돈을 빌려준 DnB은행에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박노자 교수는 “노르웨이에선 지자체가 빌린 돈으로 주식투자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은행이 이를 알고도 돈을 빌려줬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만약 은행이 소송에서 이길 경우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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