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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6) 금융자본의 위험한 게임 (下) 키코 - 어떤 구조로 설계됐나
SDE | 인터넷 논객



ㆍ환율내리면 본전, 환율오르면 파산


2008년 상반기, 현 정부의 경제수장이 수출증대를 위해 환율상승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한 후, 원·달러 환율이 오르기 시작하자 한국의 수출 중소기업들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엄청난 손실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품의 값이 싸지므로 당연히 수출이 잘되고 기업이익도 증가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실제는 달랐다. 환율이 상승하자 환율과 연동된 파생금융상품 거래를 하고 있던 중소기업들은 회사의 존립이 위태로울 정도의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된 것이다. 바로 ‘키코(KIKO)’ 상품 때문이었다.








옵션상품을 기초로 만든 파생상품, 키코



키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옵션이라는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옵션은 미래의 어떤 시점에 주가지수, 환율 등의 가격에 의거해 어떤 금융상품이나 자산(외환, 주식, 원유 등)을 사거나 팔기로 하는 권리에 관한 계약이다. 주식시장의 선물(先物)거래와 비슷해 보이지만, 선물거래 때는 무조건 사고파는 거래가 일어나는 것과 달리 옵션은 권리에 관한 계약이기 때문에 권리를 행사해야 실제 거래가 일어난다는 점이 다르다. 따라서 권리를 가진 사람은 미래의 특정한 시점에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권리를 포기할 수 있다.



옵션 거래는 계약 당사자간에 자산이 특정 가격대가 되면 사고파는 권리를 갖기로 미리 약속을 한 거래다. 따라서 달러를 예로 든다면 미리 약속한 달러값이 형성됐을 때 달러를 사고팔 권리가 생기는데 이 달러값을 행사가격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현재 원·달러 환율이 1200원이고 계약 당사자가 1250원이 될 때 달러를 사고파는 권리를 갖자는 약속을 하는 식이다.



옵션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행사가격에 자산을 살 권리인 콜옵션(Call Option), 그리고 행사가격에 자산을 팔 권리인 풋옵션(Put Option)이 있다. 콜옵션은 낮은 행사가격을 가지고 있을 때 높은 자산가격이 형성되면 낮은 행사가격으로 자산을 살 수 있으므로 그만큼 이익이다. 풋옵션은 반대로 높은 행사가격을 가지고 있을 때 자산가격이 하락하면 그 만큼 높은 가격에 자산을 팔아 이익을 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옵션을 살 때의 경우이고, 옵션을 팔 때는 이익이 반대로 나타난다. 콜옵션을 판다는 것은 행사가격이 됐을 때 콜옵션을 사는 자가 얻게 되는 이익을 준다는 뜻이 된다. 풋옵션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옵션을 파는 자는 오직 손실만 보게 되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옵션은 기본적으로 계약이기 때문에 한쪽 당사자의 거래파기 등으로 손실이 발생할 우려가 있으므로 미리 계약금을 서로 주고받는다. 이것을 옵션 프리미엄이라고 하는데 사는 자가 파는 자에게 계약금을 주게 된다. 물론 계약금은 옵션이 행사가격에 도달했을 때 발생하는 이익과 손실보다는 훨씬 적은 금액이다. 따라서 옵션을 파는 자는 옵션이 행사가격에 이르지 않게 되면 계약금만큼의 이익을 얻을 수 있고 반대로 옵션을 산 자는 그만큼 손실을 보게 된다.



달러를 통화로 한 옵션을 예로 들어보자. 만일 현재 1달러에 대한 원화값이 1200원이고 향후 달러값이 오를 것(환율상승)으로 예상해 1250원에 1달러를 사겠다는 행사가격을 가진 콜옵션을 샀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콜옵션을 산 사람은 콜옵션을 판 사람에게 계약금을 지불해야 한다. 1250원 콜옵션의 계약금이 20원이라고 가정하자. 환율이 올라서 1300원이 되면 콜옵션을 산 자는 50원의 차익에서 계약금 20원을 뺀 30원의 이익을 얻게 된다. 반면 콜옵션을 판 자는 환율이 오르지 않을 것으로 보고 거래에 참가하는데 만약 오르게 될 경우는 50원을 잃게 되지만 먼저 20원의 계약금을 받았기 때문에 손실은 30원이 된다.



반대로 환율이 내릴 것으로 예상하고 행사가격이 1150원인 풋옵션을 계약금 20원에 샀다고 생각해보자. 환율이 올라 1300원이 되면 풋옵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할 뿐 아니라 만기가 되면 옵션은 소멸하고 계약금만큼 손해를 본다. 반면 풋옵션을 매도한 사람은 계약금만큼 이익을 내게 된다. 만일 반대로 환율이 1100원이 됐다면 풋옵션 매수자가 큰 이익을 보고 콜옵션 매수자는 계약금만 날리게 된다. 또 풋옵션 매도자는 큰 손해를 보고 콜옵션 매도자는 계약금만큼 이익을 보게 된다.



다른 성질의 옵션을 합쳐 만든 합성옵션



그런데 만일 풋옵션 1계약을 사고 콜옵션 1계약을 파는 두개의 옵션을 동시에 가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옵션의 매수와 매도가 각각 1계약이 되므로 계약금은 사라지게 된다. 또 자산가격이 풋옵션 행사가격보다 떨어지면 이익을 보게 되고, 자산가격이 풋옵션 행사가격과 콜옵션 행사가격 사이가 되면 이익이나 손실이 없으며, 콜옵션 행사가격보다 높아지게 되면 손실을 보게 된다. 즉 자산가격이 하락할 때만 이익이 나는 구조로 변형되게 된다.



예를 들어 1150원의 풋옵션 매수와 1250원의 콜옵션 매도를 동시에 가지고 있으면 환율이 1200원에서 1300원으로 오르게 될 경우 계약금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콜옵션 매도에서 발생하는 손실만 남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풋옵션 매도와 콜옵션 매수를 한 사람 역시 계약금 지불없이 이익만 보게 된다. 즉 계약금을 생각할 필요 없이 오직 환율에 따른 이익과 손실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키코의 구조가 탄생하게 된다. 자산가격을 환율로 하고, 옵션의 대상자산을 달러라고 가정하자. 키코의 기본구조는 풋옵션 매수 1계약과 콜옵션 매도 2~3계약을 동시에 갖는 것이다. 이를 서로 다른 성질의 옵션이 합쳐져 만들어졌다고 해서 합성옵션이라 한다. 환율이 풋옵션 행사가격보다 낮아지게 되면 합성옵션 구매자는 1계약만큼의 이익을 본다. 그리고 환율이 풋옵션 행사가격과 콜옵션 행사가격 사이에 있게 되면 기존 옵션 계약금의 1~2배의 이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콜옵션 행사가격보다 환율이 올라가버리면 기존 콜옵션 매도 때보다 무려 2~3배나 많은 손실을 보게 되는 것이다.







투자은행이 손실보지 않도록 만든 구조


그런데 이런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투자은행 입장에서는 합성옵션과 반대되는 옵션시장 참가자를 구해야 판매할 수 있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아예 투자은행이 콜옵션 매입 3계약을 하고 풋옵션 매도 1계약을 하는 방식으로 옵션시장에 참가한다. 그런데 투자은행 입장에서는 옵션 만기일까지 기다리지 않고 바로바로 옵션을 정산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실은 이런 합성옵션을 만든 투자은행은 대부분 미국계 투자은행이기 때문이다. 미국식 옵션은 원래 만기일이 없기 때문에 옵션의 정산을 아무 때나 할 수 있다.



따라서 투자은행은 콜옵션 행사가격이 되면 바로 콜옵션 매입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해 옵션의 정산을 할 수 있다. 이것을 녹인(Knock-In) 이라고 한다. 그런데 반대로 환율이 풋옵션 행사가격보다 떨어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이 점이 ‘사기’라고까지 비난을 받게 되는 부분인데 환율이 풋옵션 행사가격보다 떨어지게 되면 합성옵션을 만든 투자은행은 손실을 보게 된다. 그래서 미리 풋옵션 매입자는 풋옵션 행사가격보다 환율이 떨어지면 자동으로 풋옵션 행사를 포기하도록 계약을 만들어 놓는다. 따라서 환율이 떨어져 풋옵션 행사가격에 이르면 자동으로 옵션 계약은 없었던 일이 된다. 이것을 녹아웃(Knock-Out)이라고 한다.



본질은 미국 투자은행의 환차손 회피용



키코는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합성옵션 상품이다. 미국의 투자은행에서 개발된 금융상품을 한국의 은행들이 판매수수료를 받고, 환율하락에 따른 손실을 줄여줄 수 있는 파생금융상품이라고 판매한 것이다. 그런데 키코의 구조는 환율하락에 따른 손실을 줄일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환율이 떨어져 풋옵션 행사가격에 이를 정도가 되면 풋옵션에 의한 이익을 내야 하지만 계약자체가 사라져버린다. 따라서 환율하락에 따른 환차손에 무방비상태가 된다.



반대로 환율이 오르면 기존보다 2~3배의 손실을 볼 수 있다. 만일 환차손 위험을 피하기 위해 수출대금만큼 키코 계약을 했다가 녹인 가격보다 환율이 오르면 수출대금의 2~3배의 손실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 중소기업이 2007년과 2008년에 각각 1억달러 수출계약을 했다. 당시 환율은 950원. 그런데 키코에 2007년 초 가입했다. 그리고 1억달러어치 키코 계약을 했다. 원화로 950억원어치다. 녹아웃 환율은 900원, 녹인 환율은 1000원이라고 가정하자. 2007년에는 환율이 떨어졌지만 940원이 최저한이었다. 당시 해당 옵션의 계약금이 10원이라고 가정하면 한국 기업은 10억원의 이익을 보게 된다. 그런데 2008년 환율이 1000원을 넘어섰다. 그렇게 되면 기업은 1억달러의 키코 계약에 의해 3억달러(3000억원)을 납부해야 한다. 환차익은 950원에서 1000원이 됐으므로 50억원이지만 키코 때문에 손실은 3000억원에서 1050억원(수출액+환차액)을 빼서 무려 1950억원의 손실이 난 것이다.



그런데 파생금융상품은 속성상 내가 손실을 보면 그만큼 이익을 보는 사람이 있다. 키코의 구조상 이익을 보는 사람은? 미국의 투자은행이다. 즉 키코는 미국의 투자은행이 한국에 투자했을 때 환율상승에 따른 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미국 투자은행용 환헤지상품이며 한국의 수출 중소기업은 이것에 반대되는 합성옵션을 매입했다가 엄청난 손실을 본 것이다.



단기에 유리한 상품을 장기 계약해 화근


사실 키코는 새로운 상품이 아니라 매우 초보적인 합성옵션이며 10년 이상된 구형 상품이다. 키코의 처음 구매자는 수출 중소기업이 아닌, 한국의 수출 대기업들이었다. 그런데 대기업들이 외환위험 회피용 상품인줄 알았던 키코가 실제로 그런 기능이 없음을 알게 되자 구매를 하지 않게 됐고, 이후 키코를 수출 중소기업에 판매하게 된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키코 구매계약을 하면서 보통 2~3년의 장기계약을 했다는 점이다. 키코 자체는 매달 풋옵션 행사가격과 콜옵션 행사가격의 중간을 기준가격으로 해 기준가격에서 상하한으로 약 5%씩 행사가격을 설정하게 된다. 그 이유는 이 구간 정도까지가 실제 옵션시장에서 자유로운 설정이 가능한 가격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파생금융상품은 일종의 확률 게임이다. 예를 들어 주사위 1이 나오면 계약금의 10배를 물어주고 나머지가 나오면 계약금만큼 얻는 게임을 한다고 가정하자. 1회의 게임에서 이겨 계약금을 얻을 확률은 무려 83%나 되지만, 10번의 게임을 전부 이겨 손실을 보지 않을 확률은 16.1%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파생금융상품의 경우 가급적 단기로 계약을 해야 손실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 그런데도 최소 1년, 최장 2~3년과 같은 장기계약을 하다 보니 당연히 엄청난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키코 판 은행도 위험관리 못해 손실



수출 중소기업들이 키코 계약을 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선물환거래(미래의 일정시점에서 사고팔 달러의 가격을 현 시점에서 미리 고정하는 거래)에 따른 은행 수수료와 증거금을 아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2007년까지 원화는 아주 완만하게 강세를 나타내고 있었고 2008년 초에는 대부분의 금융시장 참가자들이 원화의 강세를 예측했다. 키코 계약자 입장에서는 키코 기준가격에서 한 달에 기껏 1~2% 정도 환율이 내리는 상황이니 해볼 만했던 것이다. 키코 설정구간 이내에서 환율이 움직이고 있었고, 게다가 천천히 내리고 있었으니 키코 계약 중소기업은 키코의 계약금을 수익인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은행들도 문제가 되는데, 대부분의 경우 키코는 미국계 투자은행에서 만들어진 것을 한국의 은행들이 단지 판매수수료만 받고 한국 기업들에 판매한 것이다. 게다가 많은 경우 한국의 은행들은 키코 계약자인 한국의 기업들이 계약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발생하는 손실을 대신 지급하도록 계약했다. 한국의 은행들도 키코를 판매할 때 이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은행들은 지점장이 재량으로 키코를 판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판매수수료 수입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였다. 2008년 하반기 키코 손실 때문에 한국 중소기업들이 파산할 지경에 이르러 결국 키코 손실액을 내지 못하게 되자 한국 은행들은 한국 중소기업들을 대신해 키코 손실액을 물어주느라 큰 손실을 보게 됐다.



인터넷 경제논객 SDE

공학박사 출신으로 1997년 외환위기 때부터 경제학과 실물경제를 넘나드는 통찰력 있는 분석으로 필명을 날리고 있다. 최근의 세계적 금융위기와 한국 경제의 문제점 등을 다룬 <공황전야>라는 책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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