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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순기자


ㆍ금융수학의 역사

올해 전세계 금융파생상품의 규모는 500조달러(64경6000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는 전세계 국내총생산(GDP) 총합인 52조달러의 10배에 달한다. 금융수학(금융공학)이 없었으면, 이 같은 천문학적 금액이 전세계를 돌아다닌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1973년 ‘블랙·숄스 공식’의 등장



 학술지 ‘정치경제학 저널’ 81호(1973년 5-6월호)에 실린 피셔 블랙과 마이런 숄스 공동 저작 논문 ‘The Pricing of Options and Corporate Liabilities’의 첫 페이지 및 이들이 이 논문에 발표한 ‘블랙·숄스 공식’.

금융수학은 1973년 ‘블랙·숄스 공식’으로 꽃피기 시작했다. 경제학자 피셔 블랙, 마이런 숄스가 4년간 연구한 끝에 완성한 이 공식은 파생상품의 가치를 계산할 수 있게 한 최초의 공식이다. 옵션(팔거나 살 수 있는 권리) 설정 대상 주식의 가격, 옵션 행사 가격, 만기까지 남은 기간 등을 대입해 현시점에 적절하면서도 ‘위험 없는’ 옵션 가격을 정할 수 있게 한다.

이로써 시장은 주먹구구식 가격 설정에서 벗어나 ‘과학적인’ 가격을 찾을 수 있었다. 이 공식은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시카고 주식옵션거래소 등 세계 주요 금융시장에서 널리 활용됐다. 한 전자계산기 제조사가 월스트리트저널에 “우리 제품은 블랙·숄스 모델도 계산한다”고 자랑하는 광고를 낼 정도로 획기적이었다. 블랙·숄스 공식은 다양한 응용을 거쳐 금융계가 선물·옵션·스와프의 다양한 변종 등 여러 파생상품을 고안하는 데 활용됐다.

이에 앞서 1877년 찰스 카스텔리가 옵션 거래 개념을 최초로 고안했고, 1900년 프랑스의 루이 바셀리에가 비현실적이나마 금융상품 가격 변화의 확률적 분석을 시도했다. 1964년에는 비록 이자율 적용 부분이 미흡했지만 제임스 보네스가 블랙·숄스 공식과 흡사한 공식을 내기도 했다.

70년대 과학자들 월가로 가다

복잡한 수식과 기호가 무한 반복되는 금융수학을 활용한 파생상품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70년대 월가에 대거 진입한 과학자들 덕이었다.

미국 정부는 60년대까지 물리학자 등 과학자들을 정책적으로 양산하고 우대했다. 냉전기에 전쟁 및 우주탐사 분야에서 소련과 경쟁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70년대 베트남전 반전운동의 격화, 오일 쇼크 등 경제 사정 악화, 아폴로 계획 종료로 과학자들의 입지가 좁아지자 많은 과학자들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을 떠나야 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월가로 진입했다. 이들은 ‘로켓 과학자’ 또는 ‘퀀트’(계량 분석가, Quantitative Analysist)로 불렸다.

이들의 월가 진입으로 금융상품에 대한 분석은 더욱 정교해졌고 다양한 파생상품이 생겨났다.

월가는 금융수학을 통해 수익 다변화와 위험을 분산하는 기법을 계속 개발했다. 주식·채권은 물론 외환과 금리 등을 토대로 한 파생상품들, 또 파생상품으로부터 파생된 2차 파생상품 등 1000종 이상의 파생상품이 만들어졌다. 마침내 90년대 후반에는 빚 보증을 기초로 한 신용 파생상품까지 나왔다. 미국 주식시장에서 금융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80년 5.2%에서 2007년 23.5%로 팽창했다.

사고를 부른 금융수학

금융수학이 항상 성공을 보장했던 것은 아니다. 84년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사는 미국 보잉사와 30억달러 규모의 여객기 구매 계약을 체결하면서 한 은행과 달러화 선물거래를 병행했다. 계약하고 1년여 뒤 항공기 인수 시점에 달러 환율이 오르면, 보잉에 지불할 돈이 늘어날 것을 우려해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달러 가치가 하락해 1억5000만달러의 손실을 봤고 관련자들은 문책을 당했다. 그러나 이 당시만 해도 금융수학의 잘못이라기보다 설계와 판단 실수로 간주됐다.

14년 뒤인 98년 8월에는 금융수학의 ‘본가’에서도 대형 사고가 났다.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파산이다. 무려 1200억달러의 손실이 났다. 월가는 물론 전세계에 금융위기도 야기했다. 당시 자본금이 22억달러에 불과했던 LTCM은 은행권으로부터 무리한 차입을 거듭해 무려 100조달러의 자금을 굴렸다. 정교한 금융수학으로 전세계에 6만여개의 파생상품 거래로 수익을 냈지만, 수백명의 수학·공학 박사들은 연쇄 손실을 불러온 러시아의 채무불이행 선언을 예측하지 못했다. 이 회사의 경영자는 블랙·숄스 공식의 창안자인 숄스였다. 숄스는 공동경영자 로버트 머튼과 함께 9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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