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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진보신당 정책위원장을 하는 이재영과 나는 아주 오래된 꿈이 있다. 언젠가 한국에 공산당을 만드는 게 그 꿈이다. 일본이나 유럽에는 공산당이 있는 게 상식이지만, 그 상식이 현실이 되는 것을 우리가 살아서 볼지는 아직 모르겠다. 사민주의 정당이 생기고, 그 정당이 집권하고, 그게 부패해서 녹색당이 생기면, 그때쯤 한국에도 공산당이 생길지 모르겠다. 어쨌든 현실에서 공산당이 극좌에 있다면, 그것보다 오른쪽에 사회당 혹은 노동당의 이름으로 불리는 사민주의 정당이 있고, 이렇게 해서 좌파 블록이 형성된다.

쉽게 설명하면, 자본가들이 만든 정당, 그야말로 한나라당 같은 정당이 있고, 노동자들이 만든 정당이 있는 셈이다. 20세기의 현대 정치는 결국은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싸움을 어떻게 자본주의 내부에서 체제화시킬 것인가, 그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고전적인 도식에 80년대를 거치면서 새로 생긴 정당이 두 가지가 더 있다. 프랑스의 국민전선, 스위스의 중앙민주연합. 이런 극우파 정당은 자본과 민족주의가 결합되어 생긴 정당이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극우파 지도자 르팡이 대통령 결선 투표에 올라간 적도 있었다.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고, 동시에 요상한(!)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한나라당은 유럽 기준으로는 극우파 정당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민족주의가 요상한 것은, 프랑스의 ‘콜라보’ 즉 독일 부역분자들이 한 번은 정리된 것과는 달리, 우리는 친일파들이 그냥 집권해서 그 자식들을 친미파로 만든 나라라서, 정부가 직접 쓰는 문건에도 영어 약자 찍찍 쓰는 지경까지 온 것이다.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만들었던 ‘하이서울 페스티벌’, 오세훈 시장의 ‘휴먼 타운’, 전형적인 친미형 민족주의자들이다. 워낙 한나라당이 극우파 성격이 강하니, 유럽식 극우파로 치고 나온 이회창이 설 공간이 없다.

또 다른 최신 정당이 바로 녹색당이다. 사민당 혹은 사회당이 부패하면서 새로 생긴 의제, 즉 생태, 여성, 풀뿌리, 이런 가치들을 가지고 시민사회가 별도로 정당을 꾸리게 되었는데, 이게 최근 독일 등에서 1당의 자리로 진입하는 것을 앞두고 있는 녹색당이다.
순서대로 하면 자본가들의 정당, 노동자들의 정당 그리고 시민들의 정당과 극우파당, 요렇게 4개 정도가 생겨나는 게 일반적이다. 미국이야 워낙 정치 후진국이니까 4개씩 계급이나 계층이 분화하지 못했지만, 가까운 일본만 해도 이런 구도이다.

민주 정당, 개혁 정당 이런 요상한 말은 한국에만 있는 말이다. 선진국에는 20세기에 군사정권이 이런 식으로 존재하지는 않았고, 사실상 식민지의 총독부 역할을 맡은 정당은 더더군다나 존재한 적이 없다. 왜 우리는 이런 정상적인 정당의 분화를 못했고, 노동자 정당도 이렇게 변변치 못할까?
박정희·전두환 때는 군바리 때문이었고, 김대중 때는 김대중 때문이었고, 노무현 때는 노무현 때문이라고 말해왔다. 지금은? 역시 대통령 때문인가?

한국에는 노동자 세력도, 시민 세력도 정상적으로 자리를 잡아본 역사가 없다. 자, 노무현 정부는 민주정부이고, 그들은 개혁을 했는가? 생각을 해보자. 노무현 인수위원회에 삼성 자료를 가져다주고, ‘샌드위치론’ ‘2만달러 경제’ 등 이건희 회장의 평소 소신을 대통령에게 전달한 사람은 이광재다. 한나라당은 자본가 정당이고, 미국에 대한 총독부 정치를 했다.
한·미 FTA는, 열린우리당이 “우리도 자본가 정당할 수 있고, 총독부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한 사건 아닌가? 그렇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 대신 삼성과 손잡고 미국 총독부 노릇을 하고 싶었던 정당이다. 그러다 망한 거 아닌가?

노동자도, 시민도 대변하지 않는 현재의 민주당. 보궐선거 이기자마자 한나라당과 한·EU FTA 통과를 합의해주었다. 당연하다. 국회 열어주면 날치기 할 것 몰랐겠는가? 두 정당 모두 유럽식 시각으로는 자본가를 대변해주는 정당인데, 한나라당은 중앙의 대기업과 영남 자본, 민주당은 호남 자본을 대변하는 자본가들의 정당이라는 게 기본이다.
이걸 제어하는 게 시민단체가 해야 할 일인데, 있지도 않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기보다는 청와대가 마련해주는 자리를 탐하면서 민주당 비밀당원 노릇하면서 나라가 망한 거 아닌가?

일부에서는 민주당 중심으로 합당하라고 한다. 원칙만을 따지면, 지금이라도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합당하는 게 한국의 생존과 정치의 발전을 위해서 맞는 거 아닌가? 박지원 원내대표와 함께, 우리는 두 당이 합당하고, 정상적인 노동자의 정당과 시민의 정당이 생겨나는 게 옳은 것 같다.
어차피 미국 정부의 총독부 노릇하겠다고 서로 경쟁하는 두 개의 자본가들의 정당, 그게 한국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후보로 나선 강봉균, 김진표. 도대체 한나라당과 뭐가 다른 점이 한 개라도 있는가? 그냥 합당하라. 어차피 모피아들, FTA 신봉자들, 그리고 원전 예찬론자들. 이렇게 해서는 누가 해도 다음 대선은 총독부 선거가 된다.

※ 우석훈의 ‘시민운동 몇 어찌’는 신라 향가 해석으로 유명한 양주동 박사의 ‘몇 어찌(幾何)’라는 수필에서 인용한 단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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