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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이라는 이름이 몇 년째 뜨거운 감자다.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아주 독특한 성격의 정치인인데, 가끔 그가 너무 외로워 보이고 또한 측은해 보이기도 한다. 욕망보다는 이성이라는 이름에 더 어울릴 듯한 성공한 저자로서 그리고 대중적인 경제학자로서 그가 이름을 남길 수 있기를 바랐지만, 그는 정치인으로 더 남고 싶어하는 것 같다.
어쨌든 그의 부모가 이름 하나는 기막히게 지어주셨는데, 발음 그대로만 들으면 ‘시민이 있다.’ 진짜 21세기에 어울릴 법한 이름이다. 그가 이번 김해 보궐선거 중간에 “능력 없는 시민단체는 그만 빠져라”는 말을 했다. 자칫했으면 ‘무시민’이 될 뻔했는데, 어쨌든 당분간은 유시민으로 남게 되었다. 그를 위해서는 다행이다.
‘무시민’은 시민단체 내부에서도, 시민단체 외부에서도 가장 자주 지적되는 한국 시민단체의 문제점 중 하나이다. 시민단체가 작동되는 경제적 기본 원리는 시민들이 월 1만원 정도의 회비를 내는 회원으로 가입하고, 그렇게 해서 활동비와 사업비를 마련해서 움직이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100명 정도의 시민이 활동가 한 명을 책임지는 셈이다.
환경운동연합이 한창 많을 때 5만명 정도, 참여연대가 1만명 정도의 회원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이래저래 합치면 20만명 정도의 시민회원이 한국에 존재한다. 회원과는 조금 다른 ‘조합원’으로 불리는 생활협동조합이 30만명 조금 넘어간다. 중복 계산이 있을 수 있지만, 이래저래 50만명 정도가 회원 혹은 조합원으로 시민사회단체를 경제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시민들의 후원으로 움직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점점 일의 규모가 커지면서 연구 프로젝트나 정부 위탁사업 등 정부 지원금도 받게 되고 기업 후원도 받는다. 외부에서 보면 참여연대가 상당히 강성으로 보일 것인데, 다른 단체와 달리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다. 사실 세상에 공짜라는 것은 없으니, 어떻게든 돈을 받다 보면 눈치를 보게 된다. 돈은 받아도 통제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들 했는데, 세상이 어디 그렇게만 돌아갈 수 있겠는가?
원칙대로 하면 시민들의 후원과 사회적 기금 같은 돈으로 시민단체가 운영되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회비만큼의 규모로 활동할 것인가 아니면 회비 이상의 규모로 키울 것인가? 참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회적 활동이 사실 정상적으로 자신의 지지자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었던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경제만큼이나 압축성장을 하다보니 실제 지지기반이 약하다.
정당도 정상적인 당원 구조와 적절한 규모를 가지고 있지 못해서 만날 ‘진성당원’ 같은 문제가 나오게 된다. 노동자들 역시 노조 조직률이 워낙 낮고 계속해서 떨어지다 보니, 기본적으로는 불균형 문제를 가지게 된다. 한국에서 사람을 동원하는 데 성공한 곳은, 따져보면 강남 대형교회를 비롯한 보수주의 교회 외에 또 있는가?
사실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너무 바빴고, 사회적 문제에 눈을 돌리기에는 마음의 여유가 너무 없었다. 지금 집권당인 한나라당 역시 제대로 된 당원 모임 한 번 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닌 듯하다. 최대 야당인 민주당, 여기서 당원 모임이 뭐가 제대로 된 게 있는가? 그렇다면 민중들의 정당을 표방하는 진보정당들에는 민중들이 구름처럼 모여드는가? 활동가들만 잔뜩 있고, 사실상 강남좌파와 도시빈민, 요렇게 두 집단이 본진을 형성하는 것 아닌가?
실제 시민단체 내에는 회원은 있어도 시민은 없다. 그런데 정확히 얘기하면, 원래 우리나라에는 시민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회적으로 없었다. 시민단체가 시민을 만들면서 스스로를 형성시킨, 그야말로 공진화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정당 역사는 시민단체의 역사보다 길지만, 당원은 못 만들고 향우회만 잔뜩 만든 것과 비교하면, 짧은 기간 동안 시민단체들이 역사의 주체로서 시민이라는 개념의 골격이라도 만든 것은 성공이라고 볼 수 있다. 뉴 라이트와는 그래서 좀 다르다. 우파와 극우파, 이런 사람은 한국에는 많다. 그들이 실체이고, 그 실체가 있으므로 뉴 라이트는 짧은 기간에 단체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실체가 없는 곳에서 출발했으나, 지금은 어느 정도의 실체 비슷한 거라도 형성한 상태이다. 한국 사회 전체로 본다면, 시민단체는 자신의 실체를 만드는 데 짧은 기간 동안에 성공한 편이다.
지금 뉴 라이트와 비교해보자. 정부의 든든한 후원과 부자들의 재정적 지원을 받으면서 몇 배로 성공했어야 할 텐데, 짧은 기간 조직의 기반 자체가 와해되는 중 아닌가? 시민단체는 민주당 집권기에도 버텼고, 한나라당 집권기에도 어렵지만 버티는 중이다. 시민 ‘없던’ 시민운동으로 시작했지만, 지금도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정말 그랬다면, 벌써 망했을 것이다. 이건 뉴 라이트가 좀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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