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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바로 단체 내의 비밀당원이라는 문제이다. 시민운동 내에 존재하는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크게 보면 운동을 부드럽게 만든다는 장점과 부문운동의 대상을 넓힌다는 장점이 있다. 세상 일이라는 게 자기 편의 힘만 모은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고, 자신과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에게도 공감을 이끌어내는 일이 중요할 수 있다.
자기 편들만 모여 있으면 편할 것 같지만, 세상이 그렇게 좋아지는 것은 아닐 성싶다. 정치적 견해의 차이, 생활로 돌아오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곰곰 생각해보자. 부모는 보수, 자식은 진보 혹은 좌파 자식의 우파 부모들, 이게 아주 전형적인 우리 시대의 공식 아닌가? 나 역시 평생 조선일보만 보신 부모와 장인·장모, 그 속에서 살아간다. 밥상머리에서 티격태격하는 삶, 마흔 너머서도 그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생협운동에서 학교급식 운동이 등장하던 그즈음의 일이다. 친부모 혹은 주변 사람에게도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하지 못하면서 과연 내가 어떻게 세상 사람들에게 “이 일이 맞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민중단체 일을 하던 시절, 나는 부모와의 갈등으로 집을 나왔고, 부모와는 어떠한 정치적 견해나 사회적 주제도 나누려 하지 않았다. 2006년부터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연재했으니, 벌써 6년째이다. 어지간한 부모 같으면 큰 아들이 연재하는 신문 정도는 보실 듯하지만, 그러지 않으신다. 시사인에 주간 연재를 할 때도, 그리고 이번의 경향신문 연재도 마찬가지다. 그 대신 조선일보 몇 달치를 모아다 집에다 가져다 주시고는, 제발 사회와 불화하지 말라고 하신다. 내게 한나라당과의 동거는 그런 의미이다.
시민단체 내에서 한나라당 성향의 회원들과 일을 같이 하면서, 오히려 나는 조선일보만 평생 보신 부모와 화해하는 법을 배운 것 같다. 정치적 신념이 같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얘기는 있고, 서로 다른 정당을 지지하더라도 같이 캠페인을 벌일 수 있는 영역들이 있다.
나는 진보정당이 한나라당 의원들과는 얘기하지 않더라도 한나라당 지지자들에게서도 지지를 얻을 정도로 보편적 상식 위에 서 있기를 바란다. 물론 현실에서는 한나라당 의원들과는 종종 밥을 먹어도 한나라당 지지자들과는 얼굴 붉히지 않고 대화하는 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시민단체는, 그 안에 조선일보파도 많고, 한나라당 지지자들도 많아서, 어쨌든 이런 동거에는 문화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좀 익숙해졌다. 지방단체로 내려가면, 역시 지역 유지가 지도부를 맡게 되니까, 서울에서 그런 것처럼 지지정당도 잘 갈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어느 고등학교를 나왔는지가 더 중요하다. 제주도에서는 입도 몇 대인가, 즉 조상이 섬에 들어온 게 언제인가, 그런 게 시민운동에서 지지 정당이나 정치적 성향보다도 더 중요한 걸 본 적이 있다. ‘뭍의 것’이 어찌 섬의 일을 말하리요!
90년대 중후반, 환경운동을 비롯해서 수많은 전문 운동들이 이렇게 보수 쪽 흐름과도 공존하면서 새로운 운동을 열었다. 전향한 진보 쪽 인사들을 대거 받아들이면서 판세를 불린 것은 뉴라이트도 마찬가지였다. 노회찬이 인민노련 조직부장하던 시절 같이 일하던 신지호 의원이 대표적이다. 차이점이라면, 뉴라이트와 달리 진보계열 시민단체들은 전향을 강요하지는 않았다는 점 정도?
그러나 이런 동거가 문제를 일으킨 것은, 주로 단체 내부정관 등으로 ‘정치적 중립’을 명문화하고, 이걸 기정사실화했던 순간부터 벌어진다. 시민단체의 정치적 중립? 공무원을 제외한 우리나라의 어떤 사람도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할 의무는 없다. 선진국의 경우는 언론도 차라리 명목적으로 자신들이 지지할 정치적 후보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시민단체의 정치적 중립은 우스운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회원을 받으면서, 회원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였다.
DJ 시절의 시민단체 혹은 노무현 시절의 시민단체가 정치적 중립이었다고? 낮에는 중립이었을지 모르지만, 밤에 술자리에서는 진짜 다 같은 편이었다. 오죽했으면 시민단체에서 대통령 비판하면 청와대에서 “동지의 등에 칼을 꽂느냐”는 말이 튀어나왔겠는가? 지금 관변단체로 변해가는-혹은 그러기를 원하는-뉴라이트에게 정치적 결탁이라고 말 할 처지가 아니다. ‘가재는 게편’이라고, 공기업 감사 자리에 시민단체 출신들이 청와대 티오로 꿰차고 들어앉은 것은 문제다. 있지도 않은 중립!
그런 외형적 중립 규정 속에서, 정작 시민사회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테이블 위에 올라와보지도 못했다. 겉과 속이 다르면 결탁이 생기고 부패가 생긴다. 공무원 중에 ‘한나라당 비밀당원’이 암약한다면, 시민단체 속에는 ‘민주당 비밀당원’이 암약했다. 참여정부의 실패는, 형식적으로는 정치적 중립, 현실적으로는 비밀당원, 그 구조도 한 가지 이유이다. 지체된 정치세력화, 그 얘기를 다음 주에 본격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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