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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 시민이 등장한 계기를 보았다. 촛불집회에 민주시민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 속에는 한나라당 시민도 있다. 이번 주에는 그걸 살펴보자.
동네에서 만나는 한나라당은 진짜 할아버지당이나, 부자정당 혹은 토호세력 연합에 가깝다. 북한 콤플렉스가 없었다면 정당 축에도 못낄 희한한 정당이 김일성 부자 덕분에 여당 노릇한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보수정당 지지자들을 드골주의자라고 하는데, 아마 한나라당 사람들 사이에 드골파가 있었다면 ‘빨갱이’ 혹은 ‘골수좌익’, 그렇게 몰렸을 것 같다. 어쩌다 그런 극우파 할아버지들의 복덕방파에게 나라를 빼앗긴 것인지! 국민 개그맨 안상수, 가끔 보온병 동영상을 보는데, 이게 은근 중독성이 있다. 복덕방 주인들을 모아서 대통령 뽑으라고 하면, 딱 안상수 같은 재미나는 분을 뽑을 것 같다.
시민단체에는 한나라당 당원이나 지지자들이 있다. 그야말로 ‘우리 안의 한나라당’인 셈이다. 불의의 사고로 작고하신 임길진 환경운동연합 대표를 회상하면 정말 만감이 교차한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환경단체가 한겨울에 펼쳐놓은 농성장에서 당신을 뵈었다.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소주나 한잔 하시자고 하셨는데 “저 바빠요”하고 냉랭하게 돌아선 기억이,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평소에 아주 존경하는 분이었는데 그날 따라 왜 그리 쌀쌀하게 대했는지! 에코페미니즘의 길을 열었고, 가장 강력한 녹색당 창당파였던 문순홍 박사, 임길진 교수, 거기에 정운영 선생까지 며칠 사이로 중요하신 분들이 줄줄이 돌아가셨던 적이 있었다. 임길진 교수가 대표적으로 한나라당 성향의 시민운동 지도자였다.
민중단체에는 한나라당 당원이 없고, 민주당에도 없고, 진보정당에도 한나라당 당원은 없다. 그러나 시민단체에는 있다. 회원으로도 있고 지도부에도 있다. 환경운동하는데 여야가 어디 있느냐, 그런 취지인데 이게 두고두고 발목을 잡는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환경운동연합의 상당히 높은 간부였고, 그런 연유로 초선시절 서울시 인수위원장을 최열 대표가 맡았다. 좋아진 거? 없다.
한나라당 성향으로만 보면 경실련이 가장 높다는 게 중평이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캠프에 경실련 출신들이 좀 있었다. 일부는 전향한 거고, 일부는 “그래도 나같이 얘기하는 사람이 좀 있어야 할 것 같아서”라고 MB 캠프로 가기도 했다. 환경운동연합은 중간 정도 되고, 참여연대에는 한나라당 성향의 회원들은 거의 없지만 자문역할을 하는 전문가와 교수들 중에는 좀 있는 걸로 한다. 시민단체이면서 민중 성향이 가장 높은 곳은 문화연대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시민단체에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들어오는 것은 세 가지 경로가 된다. 진짜 일반 시민, 그러나 환경운동·여성운동 등 분야운동의 뜻에 동감해서 참여한 정말 순수한 동기.
두 번째는 역전향파들, 직장인들이나 전문가들 중에서 뒤늦게 생태운동이나 문화운동의 중요성을 생각해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는 다르지만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새만금 때 가장 많이 도움을 주었던 정치인은 내 기억으로는 민주당 의원들이 아니라 전재희 장관이었다. 어떻게 한나라당 사람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느냐고 하지만, 하다 보면 그런 일이 생기기도 한다.
세 번째 부류는 보험파라고 부를 수 있다. 민주당 10년 정권이 들어오면서 한나라당 계열의 전문가들이 보험용으로 시민단체에 자문역할 등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나쁘게 보면 박쥐 같은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출발하던 당시의 시민운동 역시 전문가들의 지원이 절실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들의 지원이 필요했던 측면도 있다.
뉴라이트 단체에 민주당 지지자나 진보정당 당원이 있을까? 그런 곳은 전향하고 가는 데고, 반대로 한나라당 지지자가 진보정당 근처에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시민운동에는 단체마다 비율은 좀 다르겠지만 극좌부터 극우까지, 예를 들면 녹색교통 운동 시절의 택시 운전수처럼 다양한 성향의 시민들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우리 안의 한나라당’, 이것이 시민운동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회원가입란에 지지정당을 밝히게 하고 심사해서 회원을 받는다? 이것도 현실적이지는 않고, 그게 꼭 옳다고 보기도 어렵다. 소신파·보험파·순수파, 이런 시민들이 모여서 얼키설키 부문 운동이라는 게 시작되었다. 촛불 시민의 구성이 이런 시민단체의 구성과 유사하다. 민주당이나 극좌들만 그 자리에 있었을 것 같지만, 이명박을 지지했지만 이건 아니다는 한나라당 당원, 이회창 쪽 지지자, 그런 사람들도 촛불을 들고 현장에 있었다.
내가 직접 확인한 사람만 해도 수 십명이고, 나와 같이 깃발을 들었던 사람 중에 정말 한나라당 사람도 있었다. 한나라당 당원은 시민 아닌가? 물론 그렇다. 그러나 이런 복잡한 ‘우리 안의 한나라당’이 시민단체 내부에서 결정적으로 일으킨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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