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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지수라는 수치를 내보고 싶었던 것은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지역별로 혹은 단체별로 얼마나 그 지역이 마초 성향이 강한가, 그런 걸 지표로 내보고 싶었던 적이 있다. 물론 혼자서 할 수 있는 작업도 아니고 마초에 대한 간접 지표들을 뽑아내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라서 몇 년째 마음 속에만 가지고 있고 실제로 해본 적은 없다. 그렇지만 몇 개의 작업 가설을 만들어본 적은 있다.
한국에서 마초지수가 가장 높은 지역은 어디일까? 여성들과 겸상을 아직도 잘 허락하지 않고 어머니와 아들이 같은 밥상에서 밥을 먹지 않는 걸 미덕으로 생각하는 안동이나 의성 같은 곳이 아주 높게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다.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에 마초지수가 차이가 있을까? 이런 것도 오래된 질문 중의 하나인데 별로 그럴 것은 아닌 듯싶다. 밀양의 성폭행 사건이 우리에게 꽤 큰 충격을 준 적이 있었는데, 소설가 공지영의 <도가니>에 나온 아마도 전라도 지역이 분명할 무진 역시 <무진기행>에서 따온(?) 그런 점에서는 만만치 않은 듯싶다. 고려대학교 지도부는 어찌 이리도 <도가니>의 대학 버전으로 그렇게 소설과 판박이인지, 끌끌.

가끔 고위직 여성진출 비율 등 여성과 관련된 지표를 보면 한국은 회교국가인 말레이시아보다 훨씬 낮고 요르단과 비슷한 수준의 수치로 나온다. 남녀 임금 격차 등 많은 경우 한국은 OECD 평균 근처에서 수치가 나오지 않고 회교 국가들 비슷한 데서 수치가 나오는 때가 있다. 그런 점에서 여성가족부는 한국의 정치 과정 특히 시민단체가 만들어낸 가장 큰 성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와 여성 정책, 이렇게 얘기를 꺼내보면 좀 참담하다. 일단 인권위원회가 해체되지 않고 버티는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할 것처럼 여성가족부도 정부 출범 초기, 진짜 죽다 살아났다. 한나라당 같은 할아버지들의 정당에서 이걸 없애지 않았던 데에는 수많은 여성 활동가들의 눈물겨운 호소가 숨어 있었다.
그러나 부처가 없어지지 않고 버티고 있다고 해서 뭔가 사정이 나아진 것은 아닌 듯싶다. 정부 프레임이 어떻든 소수의 열성적인 페미니스트들이 어떤 영웅적인 활동을 보여주든, 현 정권은 반(反) 여성주의 정부이고 여성운동의 위기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가 과연 파시즘으로 가고 있는가, 아닌가, 여기에 대한 논란이 아직 끝나지는 않았다. 히틀러의 나치나 무솔리니의 파시즘의 등장 가능성은 시스템의 실패를 내부 구성원 중에서 찾고, 그들을 ‘내부의 적’으로 규정하는 증오의 정치가 등장할 때 그렇다라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 정권에서 찾아낸 내부 희생자는 김용철 변호사의 표현을 빌리면 ‘전라디언’이 아니었던가? 전라도 사람은 야비하고 믿을 수 없다는 다분히 인종주의적 편견에서 경상도든 서울 사람이든 군사 정권 내내 암묵적 가해자였다.

우리의 파시즘적 경향을 보여주는 내부 희생자는 최근에는 외국인 노동자 그리고 여성으로 전환되는 중이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적대감은 아직은 유럽 수준은 아닌 듯싶다. 그러나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위험 요소이다.
그리고 여성은? ‘열폭족’이라는 형태로 이건 이번 정권에서 이미 하나의 흐름으로 나온 듯싶다. 군 가산점 논쟁 같은 게 있을 때 여성단체나 여자대학교의 게시판을 마비 상태로 만드는 사람들을 열폭족이라고 부른다. 이건 사회적 변화인데, 좋은 방향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탈마초의 흐름에서 다시 우리는 남성우월주의의 마초 시대로 역행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단체만이 아니라 여성가족부 자체가 위기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MB 시대가 종료할 때,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토건이나 국가주의 쇼비니즘만이 아니라 다시 강화된 마초주의가 아닐까 싶다.
사실 여성들을 위한 정부부처가 생겨나는 것은 나머지 모든 부처는 남성 엘리트들의 지적 우월주의이고, 딱 한 부처만 여성 정책을 고민하게 된다는 딜레마를 가지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정부 모든 부처에 여성이라는 키워드를 가진 국이나 실 하나씩은 만들고, 어떻게 21세기에 탈마초 시대를 맞을 것인가, 그런 고민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면 언제든지 우리는 열폭족과 함께 순식간에 파시즘의 길을 열 수도 있다.

사회적 경제, 돌봄노동과 같은 전형적인 여성 진영의 경제 문제에서부터 여성 노동자, 여성 알바, 여성 농민, 이런 세밀하면서도 특단의 대책을 찾기 어려운 질문을 포함해,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한국 특유의 마초 시대로부터 벗어날 것인가, 이명박 이후의 시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인터넷의 한 공간에서 발생하는 극우파가 이 문제에 대한 차별적 해법을 주장하면서부터 생겨나는 것 아닌가? 위기의 여성가족부, 다음 정권에서는 이 부처가 사회의 핵심으로 떠올라야 우리의 미래가 밝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여성부 덩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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