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보통은 내무부라고 불리는 행정안전부(행안부) 장관은 정권 제2인자의 자리인 경우가 많다. 지금 프랑스 대통령인 사르코지가 내무부 장관으로 있으면서 대통령 준비를 했었다. 전 대통령인 시라크와는 우파 내에서 라이벌 관계였는데, 그가 가장 강력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다음 정권을 노린 셈이다. 시라크가 대통령을 준비하면서 절치부심, 결국 파리 시장이라는 자리를 차지했는데, 이게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을 대통령 전초전으로 노렸던 바로 그 전략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행안부 장관은 다음 대통령이 가는 자리, 이렇게는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지금 행안부 장관이 누구인지 기억하는 국민이 있을까? 한때 유명했던 앵커였던 맹형규 장관이지만 국민들은 이제 그런 사람이 누군지 신경 쓰지도 않는 것 같다. 그 대신 경찰청장은 대부분 안다. 행안부 내에는 경찰청과 소방방재청, 두 개의 청이 있는데 사람들이 아는 건 경찰청장뿐이다.

따지고 들면 행안부만큼 국민들의 삶과 밀접하고 또 시민단체와도 긴밀한 협조 관계에 있게 되는 부처도 없다. 우리나라의 시민단체도 중앙형 조직에서 점차적으로 분산형 조직으로, 즉 지역의 풀뿌리 단체로 분화하는 중이다.


지난 정부에서 집권을 시작하자마자 분권이라는 키워드를 내건 적이 있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그런 분권으로 이루어진 것도 별로 없을뿐더러, 그냥 지역별로 토건 사업들을 벌이면서 토건 경제를 강화시키는 부작용이 벌어지게 되었다.

우리에게 자치의 역사는 짧고, 또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정치나 행정이 경제처럼 ‘압축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기지도 않는다. 그래서 어렵더라도 자치의 방향으로 가는 게 맞을 것 같고, 그래서 행안부 역시 예산도 늘리고, 그 기능도 더욱 강화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원론적인 입장이고 행안부를 강화하는 데 찬성할 시민단체는 별로 없다. 행안부 산하의 경찰청과 좋은 관계에 있는 시민단체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에게 장관 이름 대보라고 하면 몇 사람 안 나오지만, 경찰청장 이름은 어지간하면 알 것이다. 이게 우리가 ‘경찰국가’라는 현실의 한 단면이다. 경찰 없이 통치가 가능한 정권이 오기를 바라지만 대화하고 타협을 찾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국가 운영에 근본적인 변화가 오기 전에는 당분간 한국은 정치가 아니라 경찰력으로 통치하는 경찰 국가의 모습을 계속 가질 것 같다.

지난 정부에서 하려고 했는데 별 성과가 없이 끝난 것은 경찰 권력의 지역화 즉 지방 경찰로의 분산화 과정이다. 만약 다음 정권이 시민의 정권이 된다면, 당연히 경찰 국가 체계를 일정하게 해체해야 하는 것 아닐까?

경찰의 역할에 치안과 공안이 있다면 지금은 공안을 잘 하는 경찰들이 승진하고 공을 세우게 되는 시기가 아닌가? 영화 <체포왕>에 등장한 박중훈 이선균 같은 사람들은 지금과 같은 경찰국가에서는 절대로 경찰청장이 못되는 거 아닌가?

검찰이 수사를 주도하든 경찰이 수사권을 갖든 국민들 입장에서는 어차피 다 그게 그거고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시각으로 문제를 봐주려고 해도 ‘밥그릇 싸움’ 이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문제의 본질은 경찰의 힘으로 국가를 유지하고 검사들의 힘으로 정치를 유지하는, 그런 물리력에 근거한 국가 체계 자체가 문제이다. 경찰 개혁이라고 해야 수사권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 이런 건 다 말장난이고 시민과 경찰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 그게 본질이다.

길게 보면 토건으로 흐르는 지방행정 대신 복지와 안전과 같은 행안부 본연의 임무를 통합적으로 강화하는 방식으로 가는 게 맞다. 지역에 토건 재정 형태로 가는 국토부의 중앙 예산을 행안부 예산으로 전환해서 자치에 대한 권한과 함께 책임을 질 수 있게 하는 것이 시민의 정부에서 행안부가 가야 하는 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경찰청도 상당 부분 지역 자치의 영역으로 넘기고 중앙은 통합 관리 형태로 가는 게 옳다. 부산에 3차 희망버스가 간다고 서울의 전·의경 절반을 부산으로 빼는 지금의 경찰 국가, 이걸 언제까지나 계속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오세훈 서울시장이 경찰력까지 갖는다고 생각하면 솔직히 오싹하기는 하다. 그래도 그 상태에서 정부 내에서의 견제, 시민들의 참여와 감시 그리고 계속되는 제도 개선들을 통해서 우리의 자치 능력을 높여나가는 게 궁극적으로는 가야 하는 길이다.

행안부 장관은 누군지도 모르고 경찰청장 이름만 기억하는 지금의 기형적인 구조를 언제까지 끌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지독한 경찰국가, 이제는 그만하자. 경찰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 정권, 그건 이미 망한 정권이고 실패한 정권이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