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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아저씨들이 보면 기겁을 하면서 저것도 운동이냐 할 그런 운동들이 시민 진영에는 종종 있다. 몇 년 전에 채식주의자들이 조그만 단체를 꾸릴 때 저게 운동이냐, 그런 목소리들이 있었다. 지금 한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운동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지난 겨울 구제역 파동 때 맹활약했던 카라, 그들의 모체가 바로 채식주의였다. 별의별 운동단체와 활동가들과도 일해 본 기억이 있다. ‘꼴페미’라고 사람들이 부르는 여성 근본주의, 그중에서도 가장 강성인 영 페미니스트들과도 중요한 일들을 같이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나도 잘 적응하기 어려운 게, 평화 근본주의자들과 생태 영성주의자들이다. 비밀스러운 종교, 밀교의 느낌을 접할 때, 가끔 내가 가지는 상식이 시험에 든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절대 평화, 내 안의 평화, 마음속의 평화, 이런 것들이 오히려 내 평화를 깨뜨린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래도 이들과 같이 일하는 게, 로자 룩셈부르크가 ‘어른들의 군사 놀이’라고 했음직한 극단적 전쟁광들을 이들이 제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두 종류의 전쟁 마니아들이 있는 것 같다. 한쪽에는 북한을 증오하는 게 자신의 생존 이유라고 생각할 정도로 북한 혐오로 자신의 삶을 소진하는 조갑제류의 사람들이 있다. 또 다른 한편에는 밀리터리 마니아 혹은 군사 오타쿠라고 불리는, 신무기 도입을 게임처럼 즐기는 또 다른 신인류, 이들이 전쟁을 지지한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는 국방산업을 둘러싼 복잡한 자본 메커니즘이 숨어 있다. 이라크전 때 전쟁의 외주화가 어느 정도 진전이 되었다. 전쟁은 변하지 않는 국가의 일이라고 얘기하지만, 군대 급식 같은 일상의 영역에서 첨단 무기를 둘러싼 채산성에 이르기까지, 생각보다 복잡하고 또한 변화무쌍하다.


 

여성 학군사관후보생(ROTC)/ 경향신문DB


시민단체가 국방에 대한 의견 역시 그만큼 복잡하다.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의무병역제에서 모병제로 바꾸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러나 모병제는 보통 우파들의 정책이고, 해외 파병과 국제전을 치르는 데에는 ‘우리들의 아들’이 죽는 것보다는 직업 군인이 죽는 게 여론상 유리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징병제를 유지하면서 어떻게 효율적이며 인간적인 병역 구조를 만들 수 있는가, 시민단체의 의견이 좀 변화하고 있다. 여기에 여성단체들이 새로운 의제를 제기하는 중이다.

여성도 군대에 가겠다, 이런 얘기가 군가산점 논쟁의 여파로 여성단체 일각에서 제기되는 중이다. 다만 병역을 일종의 사회적 서비스처럼 이해해서 돌봄 노동이나 사회 서비스 부문을 늘여서 남녀 모두 사회에 대한 봉사를 한번쯤 하자, 이런 식의 얘기들이 최근에 제기되고 있다.
시민단체와 국방부의 충돌이 ‘양심적 병역 거부’라고 부르는, 종교적이든 양심의 이유든 군대에 가는 걸 거부하고 차라리 감옥에 가기를 선택한 ‘양심적 소수자’에 대한 문제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한때 군대가 일반 사회보다 선진적이고 엘리트적인 요소를 가진 시절이 우리에게 있었다. 박정희, 김종필, 모두 당시로서는 매우 우수한 엘리트들이었고, 젊은 장교들은 사회 일반 평균보다 분명 우수했었을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다보니 군인들끼리 결정하면 된다, 그 철의 명제에 흔들림이 온다. 군대 중의 군대, 해병대의 문제는 자기끼리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국방부와 시민단체의 접점은 다원적이고 복잡한데, 나는 아직도 군인들의 순혈주의만으로는 경제사회적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을 거라고 본다. 군의 신자유주의화, 이게 조금만 더 진행되면 가난한 집 자식들만 전투병으로 남고, 부자들은 관리직이나 행정직으로 빠지는 내부 모순이 더욱 심화될 것 같다는 걱정이 있다.

지난 정권에 논의하다가 덮어놓은 의제 중의 하나가 국방장관이 누가 될 것인가의 문제이다. 민간인은 국방장관 하면 안되는가, 요게 핵심 질문이다. 예를 들면 요즘 ‘폭풍 간지’로 ‘사나’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던 문재인 같은 사람은 국방부 장관이 되면 안되는가? 쿠바 위기 때 국방부 장관을 맡았던 세기의 국방부 장관 맥나마라는 직전 직업이 포드사 부사장이었다. 민간인 국방부 장관, 이게 군의 고루한 순혈주의와 국방부의 폐쇄성을 개방하는 첫 번째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현 정권에서는 어차피 군대도 안 간 사람이 군통수권자는 물론이고, 국정원장 등 주요 국가안보 보직을 다 맡았었다. 군면제자보다는 문재인급의 인사가 군대를 맡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누가 국방개혁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군인들 스스로는 개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 군대는 닫혀 있는 것 아닌가? 그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폐쇄형 조직이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딜레마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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