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시민단체가 한국에서 그 힘이 절정기에 올랐던 것은 아무래도 2000년 낙선운동 때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시민단체가 하는 얘기를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이런 현실적 실력 행사가 배경이 된다. 남 잘 되는 건 못해줘도 고춧가루는 뿌릴 수 있다, 그런 게 낙선운동이 가진 메커니즘이다. 좀 치사해보이기는 해도 시민적 가치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건 물론 현실화하기에도 가장 강력하다.

노무현 정권을 지나면서 시민단체가 사실상 집권 세력이니까 힘이 세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 권력이라는 게 불가근 불가원의 속성이 있어서 너무 가까우면 단체의 운동은 좋아지지는 않는 경우가 생긴다. 실제로 환경단체 등 시민운동의 위기에 대해서 지적이 있고 공개적인 토론회가 열리기 시작한 게 2005~2006년이다. 결국 정권을 만들어 냈던 2000년의 힘이 점차 빠지기 시작하고, 결국 2007년 대선에서 정권을 내어준 것, 그렇게 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부분의 기존 단체들이 더 어려워졌다. 정부 보조금 같은 건 아예 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정했던 참여연대가 어느 정도 버티고, 기존 단체들은 정말로 어려워졌다. 환경운동연합은 근근이 틀거리만 유지하는 정도이고, 문화연대 같이 정말 메이저 중의 메이저 단체라고 할 수 있던 곳은 눈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현상 유지도 어렵다. 이렇게 보면 시민단체 전체가 위기로 보이는데 꼭 그렇다고는 말하기가 어려운 게 이 와중에 잘나가는 단체들도 있기 때문이다.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이 노조 창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경향신문DB


최근에 생긴 단체 중에서 미래의 가능성만으로 보면 청년 유니온이 가장 중요한 단체라고 생각한다. 비정규직 시대에 노조와 시민운동 그 사이에서 매우 독특한 특색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20대들이 워낙 가난해서 아직 그 명성만한 폭발력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20대의 힘으로 운동을 한다, 뜻은 세울 수 있지만 세력을 세우기는 어렵다, 시작부터 지켜본 내 잠정 결론은 그렇다. 뜻과 현실적 힘이 다 같이 결합된 단체 세 개를 꼽자면, 청년 유니온을 꼽기는 어렵다.

카라,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국민의 명령, 이 세 가지가 최근에 시작됐고, 뜻과 현실적 힘이 다 같이 결합되면서 지금 한국을 흔드는 단체가 됐다
.
카라와 사교육의 경우는 여성들이 본진을 형성하는 곳이다. 동물보호와 관련된 카라는 미혼여성과 기혼여성, 다 참여한다. 이걸 보고 중산층 여성들의 할 일 없는 문화 취향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렇게 간단하게 볼 일은 아니다. 모임의 주축은 채식주의자들로부터 시작된 것이고, 지난 겨울 구제역 파동 때 그야말로 전선 맨 앞에 서 있던 강성파 운동이다.
교육 걱정 없는 세상은 진짜로 어머니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단기간에 이 단체가 이 정도로 커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좀 있는데, 다음 대선을 뒤흔들 진짜 힘은 이 두 단체에서 나올 것이다.

한나라당이 복지까지는 따라 온다고 해도 이 두 단체가 가지고 있는 전위적 성격까지 따라오기는 어렵다. 급식 다음 의제는 사교육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오는 것은 일부 호사가가 실험적으로 해보는 주장이 아니다. 실제 시민적 참여의 실체가 이번 정권을 거치면서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외를 넘어서 조기유학까지 가는 걸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대치동식 한나라당 고품격 당원들이 사교육과 동물 복지를 이해하기는 좀 어려울 것이다.

국민의 명령 문성근 대표/경향신문DB


배우 문성근의 국민의 명령, 이걸 시민운동으로 보아도 좋은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과 격론이 있었다. 회원도 많고 영향력도 강하다는 기준에서는 잘 나간다는 건 맞는데, 이게 시민운동이냐, 그 성격 규정이 좀 어렵다. 시민운동이 아니라고 반대하는 사람은 그냥 민주당 외곽조직 혹은 친노 공개조직에 불과하다는 이유가 하나, 또 하나는 다음 대선 끝나면 없어질 거니, 시민운동으로 볼 수 없다는 게 또 다른 이유이다.
두 가지 모두 맞는 말이기는 한데, 크게 보면 낙선운동에서 맥을 이어가는 시민운동 정치세력화의 한 유형이라는 게 내 최종 결론이다. 낙선운동 관련 단체가 연대체도 이미 해소되고 없지만 그걸 시민운동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정치운동도 운동의 하나라고 본다면 국민의 명령이 시민운동이 아니라고 할 근거는 별로 없다.

그러나 기왕 사람이 모였는데 선거 한 번 치르고 해소하는 게 옳을까, 그런 진로에 관한 문제는 좀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어떤 정권이든지 감시와 견제는 필요할 것인데, 어떻게 하면 홍위병으로 변질하지 않고 건강한 감시세력으로 남아 시민운동의 역할을 계속할 것인가? 노사모는 왜 시민운동으로 성공적으로 전환되지 못했는가, 이런 고민들이 이들에게도 유효할 것 같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