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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지방선거 몇 년 전에 시민단체 내에서 서울시민포럼이라는 단체를 결성해서 서울의 지자체 선거를 준비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가 염두에 두었던 것은 박원순 대표였는데, 그가 출마하는 데까지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그해 서울시장 선거는 결국 강금실과 오세훈의 양파전으로 갔고, 여성단체는 강금실을, 그리고 환경단체는 음으로 양으로 오세훈을 도왔다. 환경단체는 1992년 리우에서 벌어진 환경 정상회담에서 생겨난 ‘의제21’을 중심으로 지자체와의 협력 구조가 생겨났는데, 고건 서울시장 때 이후로 서울시와는 일정한 협력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오세훈 서울시장의 초대 인수위원장을 최열 대표가 맡기도 하였다.

환경운동연합이 지자체와 여러 가지 양상으로 협조도 하고 갈등도 빚게 되는 반면, 참여연대는 ‘어드보카시’라고 부르는 일종의 대변인 운동으로서, 중앙정부 및 국회와 더 많은 일을 했다.

경향신문DB


박원순이라는 이름은, 참여연대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넓게 보면 한국 시민단체의 상징 중의 상징이기도 하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IMF 직후에 참여사회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참여할 때의 일이다. 우리는 그를 ‘박변’이라고 불렀고, 우리가 하고 싶던 얘기를 그를 통해서 중앙정치에 전달하고는 했다. 그는 지도자라기보다는 ‘우리의 입’ 같은 존재에 더 비슷했다.

활동가들은 최열 대표나 박변이 하는 얘기를 그냥 듣고 따르는 그런 관계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힘을 활용한 그런 관계에 가깝다. 그건 행정의 장관과 국장 혹은 사무관 관계 아니면 재벌의 CEO와 실무자 간의 관계와는 확실히 다르다.

박원순의 시간을 크게 3가지로 나누면, 참여연대 사무총장 시절, 아름다운가게를 넓혀 나가는 아름다운재단 시절 그리고 가장 최근의 희망제작소 시절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단체 활동가에서 재단 이사장 그리고 연구소 소장의 3단계를 밟아왔다고 할 수 있는데, 이 각각의 기관은 박원순이라는 상징성만 교류하지, 운영이나 결정에 서로 관여하는 일은 거의 없다.
삼성이나 현대 같은 곳들이 오너의 지분을 통해 지배한다면, 위의 세 단체는 박원순이라는 상징성을 통해서 오히려 박원순을 지배하는 관계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형식적으로만 보면 성공의 연속이지만, 이 과정이 꼭 그렇게 부드러웠던 것만은 아니다. 참여연대 시절에는 각종 연대 사업에서 성공의 열매를 전부 가져갔다는 투덜거림이 있었고, 아름다운가게는 이미 활동하던 지역의 단체들에 백화점식으로 군림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희망제작소는 워낙 경제적으로 운영이 어렵다보니, 연구원과의 내부 갈등이 적지 않게 있었다. 그래도 “이건 박변이 하는 일이니”, 그렇게 서로 조정하고 문제점들을 풀면서 지금까지 왔다.

초창기의 참여연대가 하던 일들도 경제민주화 등 몇 개의 단체들이 분화하면서 지금은 많이 분산화된 상태이다. 한때는 참여연대 활동가를 뽑을 때 논술시험까지 보게 되는 등 청춘들의 선망의 직장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보다는 많이 약해진 상태이다.

그렇지만 참여연대가 한 가지 잘한 건, 다른 시민단체에 비해서 정부의 지원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고, 그걸 지켜나갔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 많은 시민단체들이 돈줄이 말랐다고 할 정도로 혹독한 시기를 버텼지만, 상대적으로 참여연대는 덜 고통을 받았다. 받던 게 없으니, 끊길 것도 없는 상황이다.

국가를 잘 운영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대통령 후보를 배출하고 대선 과정을 실무적으로 꾸려갈 수 있는 정당이 아닌 종합 조직이 한국에는 몇 개가 있다. 몇 개의 재벌이 그렇고, 교수와 졸업생들로 구성된 대학 조직이 그렇다. 서울대 법대나 경기고 같은 데가 이런 비정당 조직이다.

노조는 규모는 크지만 노동문제 그것도 정규직 노동문제에 집중하다 보니, 그런 종합능력은 없고, 농민들의 조직인 전농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정치운동의 창구로 진보정당 운동을 만들었지만, 생각보다 내부 역량 축적의 속도가 늦다. 참여연대와 환경운동연합 그리고 여성운동의 경우는 깊이는 깊지 않을지라도 21세기에 그런 종합적 능력을 새로 갖춘 조직들이다.

박원순의 서울시장 출마는, 시민운동의 정치참여라는 새로운 시도이며 시민운동의 출마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게 ‘박변’이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던 위상이다. 안철수 원장은, 그를 지지하는 튼튼한 계층이나 세력은 있지만 그 힘을 물리화시킬 수 있는 집단이 아직 없다. 박원순은 대중적 인기는 약하지만 국정 아니면 시정 같은 것을 수행할 집단의 뒷받침이 있다.

두 사람의 시장후보 단일화는 IT 세대와 시민운동 세력 사이의 단일화 같은 것이다. 그리고 박원순은, 극좌파는 절대 아니다. 나와 비교하면, 한참 오른 쪽에 있는 사람이고, 훨씬 ‘마일드’한 사람이다. 유럽 기준으로, 중도우 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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