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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궐선거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석연 변호사의 갑작스러운 사퇴는 아마 1주일만 지나면 뉴스거리도 되지 않고, 그는 잊혀진 사람이 될 것이다. 그 와중에 그가 박원순 후보에게 토론을 요청하고, 나경원이 아니라 시민후보로서 박원순과 단일화하겠다는 제안은 그냥 해프닝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이렇게 간단하게 볼 일은 아니다. 보수 쪽에서 이석연은 그냥 행정수도 이전의 위헌 소송을 제기한 율사 정도로만 알려졌겠지만, 그는 1999년부터 2001년까지 경제정의실천연합, 흔히 경실련이라고 부르는 곳의 사무총장이었다. 박원순이 한참 참여연대 사무총장을 할 때는, 그만큼 유서깊고 중요한 단체의 실무 책임자였다. 일단 나는, 마음이 애틋해졌다.

그가 박원순에게, 나는 나경원이 아니라 당신과 단일화할 수 있어,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서 동지적 애틋함이 느껴졌던 것은 나만의 감정이었을까? 뉴라이트와 진보단체가 단일화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참여연대와 경실련이 토론을 하고, ‘연대’한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10년이라는 공간을 넘어, 예전에 우리는 동지였잖아, 그 얘기를 이석연이 한 것이다.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토론 한 번은 해봄직했다. 정치가 무서운 대결구도이지만, 이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애틋함마저도 없는 건 아니다.

이석연 (경향신문DB)


연전에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유행할 때, 정의가 보수의 용어인가, 진보의 용어인가, 그런 논쟁이 있었다. 조선일보 측에서는 원래 정의는 보수 쪽 용어인데, 왜 진보에서 이 책을 놓고 이 난리를 치느냐, 그렇게 투덜거렸다. 그때 나는 한국 보수가 딱 요만큼이라도 하면 좋겠다는 의미로 이 책을 보는 거다,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경제정의를 추구하는 단체, 경실련은 딱 그렇게 보면 된다.

여기서부터 더 오른쪽으로 가면, 이제 아스팔트 우파와 부모연합 같은 무서운 데가 나오지만, 여기서 약간만 왼쪽으로 가면 이제 보수들이 “그러면 북한으로 가라”고 면박 주는 그런 단체들이 나온다. 좋든 싫든, 정의는 좌파와 우파가 다 사용하는 개념이 되었고, 경실련은 그렇게 보수와 진보의 논의가 만나고, 실제로 인사들도 이곳을 중립지처럼 활용한다. 시민운동을 참여연대나 환경운동연합, 이런 큰 단체 몇 군데서 다 만든 게 아니라 지역의 작은 단체들의 기여도 많았듯이, 경실련의 기여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더라도 아파트 등 부동산 문제, 조세 문제 그리고 농업 문제 등에 대해서 경실련이 기여한 바가 많다. 지난 대선에 이명박 캠프의 농업특보를 했던 윤석원 교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농업 분야를 맨앞에서 이끌었다. 민주당, 심지어 민주노동당과 일하는 전문가들도 경실련 내에서는 한나라당 이데올로그들과도 편안하게 같은 테이블 앞에 앉아서 운영은 물론 정책에 대한 상의도 할 수 있다. 물론 중요한 선거나 TV 논쟁 같은 때에는 또 돌아서서 각자의 길을 가지만, 그렇다고 이게 경제정의에 대해서 평상시에 만나고 협력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지는 않는다.

참여연대와 경실련의 가장 큰 차이점은, 많은 연대투쟁에 올리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고 단독출격하는가, 그런 거지 선명성이나 이데올로기의 차이는 아니다. 민생경제라는 표현을 쓰면, 참여연대가 더 잘한다고만 말하기는 어렵다. 나도 농지투기 문제나 뉴타운 문제, 아파트값 폭등 문제 등과 관련해 경실련과 많은 협력을 했고, 실제로 그들의 자료를 통해 배운 것도 많다. 우리나라 전체를 통틀어 봐도, 이 정도로 좌우가 격의 없이 토론하고 협력하는 것은 경실련과 대학 동창회 정도 아닌가?

이석연이 이번에 남긴 가장 큰 성과는, 보수 시민단체가 갈 수 있는 세 가지 길을 보여준 것이라는 게 내 평가다. 첫째는, 지난 대선 때 했던 것 같은 한나라당 2중대의 길. 둘째는, 조금은 더 급진적 보수들이 생각하는 자체 세력화, 아마도 사퇴하지 말고 끝까지 가자고 했던 사람들이 이 그룹일 것이다. 셋째는, 일종의 좌우 사이의 중립 지역 혹은 완충 지역으로서의 시민사회의 역할, 즉 경실련 모델의 확대.
나경원과의 단일화를 끝까지 언급하지 않고 이석연이 사퇴한 것은, 그가 첫 번째 길은 아니라고 보고, 나머지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뉴라이트가 가야 한다는 얘기를 한 것이라고 본다. 물론 경실련과 반북 시민단체 사이에는 넘기 어려운 현실적 간극이 있다.

진보 시민단체만 놓고 보면, 아마 한쪽 끝에 경실련이 있을 것이고, 또 다른 끝에는 문화연대가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과 진보정당, 즉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양 극단에는 이런 단체들이 서 있다. 이석연에게 “힘도 없는 게 왜 나왔어”, 그렇게만 보고 말 것은 아니다. 그는 출마하면서 던져준 메시지는 약했지만, 사퇴하면서 한국의 보수가 선택할 몇 가지 선택지에 대한 밑그림을 던져놓은 셈이다. 한나라당이 경실련 정도의 정책적 논의가 가능하다면, 진짜 환골탈태가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게 진짜 일본 자민당 모델이기도 하다. 미국 공화당과 일본 자민당의 차이는, 딱 뉴라이트와 경실련만큼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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