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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를 분류하는 방식이 몇 가지가 있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활동영역별로 환경운동, 여성운동, 감시운동, 이렇게 분류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최근에 점점 중요해지는 분류는 중앙형 조직 혹은 전국형 조직과 풀뿌리 시민단체로 구분하는 것이다.

말은 풀뿌리가 중요하다고는 했지만, 미진한 것은 맞다. 박원순의 경우는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시절 중앙형 시민운동에 익숙했다가 희망제작소 이후로 풀뿌리형 운동으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한국의 풀뿌리 단체는 아직 대중적 스타를 배출하지는 못했다. 반면에 참여연대의 박원순, 환경운동의 최열 그리고 여성운동의 한명숙 등 중앙형 운동에서는 어지간하면 이름은 알고 있는 그런 사람들을 배출했다. 1세대 지도자였던 박원순과 최열은 동반자적 관계이면서 약간의 라이벌 의식도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물러날 때 중앙형 단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게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단체 내부에서 가졌던 리더십에 대한 고민들이었다. 일단 출발은 했고, 사회적인 환기도 이끌어냈는데, 언제까지 박원순, 최열이 사무총장을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여성재단은 1999년, 아름다운재단은 2000년 그리고 환경재단은 2002년에 출발을 하게 된다. 이외에도 넓게 보면 시민운동의 영역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으로 지역재단과 함께 일하는 재단 등을 거론할 수 있다. 재단의 규모와는 상관없이 시민운동의 상징적 존재인 박원순과 최열이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사건이 되었는데, 내부적으로는 1세대 리더들의 향후 거취와도 연관이 있었다.

당시 이제 막 50대인 이들이 사무총장으로 실무를 계속 지휘하고 있기도 좀 그렇고, 은퇴하기에는 너무들 젊었다. 마땅한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시민운동에 재단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들에게 재단을 만들 돈은 처음부터 없었다. 당연한 일인데, 사람이 아닌 돈이 주체가 되는 재단은 기부자와 후원자가 필요하다.

횡령.알선수재 혐의로 1심 선고재판을 마친 최열 환경재단 대표가 소회를 밝히고 있다. (경향신문DB)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참여연대와 아름다운재단의 관계는 성공적이었는데, 환경재단의 경우는 꼭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재벌 해체 운동과 삼성 문제를 다루던 참여연대는 기업 후원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아름다운재단에서 기업 기부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모단체에 재정적으로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 구조이다.
그렇지만 환경운동연합은 기업 후원을 받고, 카드사와 파트너십 사업을 하기도 했다. 감시운동과 환경운동의 차이 정도로 이해하면 무난하다. 그런데 환경재단이 생기니까 이제 기업들은 재단 쪽으로 후원의 방향을 바꾸었고, 환경운동연합은 구조적 재정난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시민단체가 기업 후원을 받을 거냐 안 받을 거냐, 이 문제는 민감한 것이다. 외국과 한국의 차이점은 시민운동의 역사가 짧아 자발적 시민후원이 충분치 못하고, 시민단체의 기금을 지원하는 별도의 펀딩기관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돈이라는 게 깨끗한 돈과 그렇지 않은 돈이 처음부터 나누어져 있느냐, 이런 곤란한 고민들이 2000년대 초중반에 시민운동이 부딪힌 현실적 문제였다.

최근 최열은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박원순은 정치지도자로 새로운 출발을 하는데, 재단 운영에 관한 논란들이 불거지게 되었다. 처음부터 돈을 모아놓고 움직이는 재단 구조가 아니었으니,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한번쯤은 논란이 되고 또 새로운 원칙들을 만들면서 나아갈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민운동에도 재단의 시대가 한번쯤 온 것인데 그렇다고 재단을 없앨 건 아니고, 풀뿌리 재단 등 사회적 간접자본에 해당하는 이런 장치들이 더 늘어나는 게 우리가 갈 방향이기는 하다. 그런 걸 쌓아두지 않으면 정부지원금과 기업후원금, 두 개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회계처리 방식이나 돈 처리 방식에서 시민단체는 여전히 주먹구구식이기는 하다. 활동가들이 하는 일이라서, 몰라서 그런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체계적 복식회계 개념이 아직 잘 자리잡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다. 그리고 그 중간에 횡령사건들도 가끔 생겨난다.

그렇지만 기업들이 하는 분식회계와는 규모는 물론 양상도 전혀 다르다. 미숙한 건 맞는데, 한국 기업의 고질적 병폐라고 하는 분식회계나 비자금 조성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기업이나 사학재단에서 하던 걸 이 사람들도 하지 않았겠나, 그런 눈으로 보수파들은 볼 것이다. 시민단체의 지도자는 그런 총수적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식의 일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자, 다음 주에는 시민단체 내의 노조문제라고 할 수 있는 뜨거운 감자, 평간사협의회에 대해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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