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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스웨덴) | 유희진기자

ㆍ“환자 수만큼 국가가 운영비 지원 ‘제한된 민영화’로 서비스 질 높여”

스웨덴의 의료서비스는 주로 세금으로 재원이 조달되는 국가보건서비스(NHS·National Health Service) 방식을 취하고 있다. 연대의 원칙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벌어 세금을 많이 낸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의료서비스가 필요할 때는 적은 비용으로 동등한 치료를 받는다.

주요 국가들의 보건의료체계 성과지표 평가에서 1, 2위를 다투는 스웨덴의 의료서비스. 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의료진들은 어떤 신념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까. 지난 6월3일 스웨덴의 1차 진료소 티펨(Tippem)의 모니카 스칸츠(Monica Skantze·여·사진) 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스웨덴의 의료서비스는 모두에게 동등한 혜택을 주고 있을 뿐 아니라 서비스의 질도 높아요. 일하면서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스칸츠 소장은 1980년대 이후 스웨덴에 불었던 신자유주의에 따라 각 기관에 추진된 민영화에 대한 외부의 시선에 대해서도 인식하고 있었다. “놀라운 사실 하나 알려드릴까요. 환자들은 의료부문에 민영화가 도입된 지도 몰라요. 그들이 받고 있는 의료서비스 혜택은 전과 비교해서 큰 차이가 없거든요. 제가 생각하고 있는 ‘민영화’와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민영화’의 개념에는 큰 차이가 있을 거예요.”


그녀는 ‘차이’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스웨덴에서 쓰이는 ‘민영화’는 개인에게 완전히 다 내주는 ‘자율’의 개념이 아니다. 철저히 정부의 관리 아래 놓여 있는 ‘제한된 민영화’다. 스칸츠 소장이 있는 티펨 진료소는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스톡홀름시의 관리를 받고 나라 세금을 받아 운영된다. 민영 의료기관의 방식은 조금 다르다.


“관리는 민영에서 해요. 하지만 운영은 결국 세금으로 하거든요. 민영기관에서 환자를 받고 진료를 하면 환자 1인당 일정 금액을 나라에서 받는 거죠. 저는 일정 월급이 정해져 있지만 민영기관은 환자를 더 많이 받아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잖아요. 그래서 환자를 많이 유치하려고 서비스 경쟁을 치열하게 벌여요. 서비스가 좋다고 소문이 나야 환자들이 더 많이 찾아오니까요. 그러면 저희도 밀리지 않는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신경을 많이 쓰죠. 오히려 민영화로 좋아진 점이 있어요. 경쟁이 가져다주는 장점, 아시잖아요?”


민영화를 추진하는 당국에서는 민영기관 선발 공고를 낸다. 그러나 요구사항이 매우 까다롭고 규정도 많아 선발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스칸츠 소장은 매우 두꺼운 서류철 하나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게 다 지켜야 하는 규정들에 대해 설명해놓은 거예요. 환자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해주기 위해 철저히 관리하려는 거죠. 제대로 할 거 아니면 신청조차 하지 말아야 해요.”


스칸츠 소장은 ‘미국의 의료문제’에 대해서도 똑부러지게 답했다.

“미국이 의료 민영화 때문에 부작용이 심각하잖아요. 오바마 대통령이 그것을 되돌리려고 하는데 쉽지 않을 거예요. 이미 제약회사들과 의료기관들이 결탁하고 있기 때문이죠. 스웨덴에서 제약회사와 우리 같은 진료소가 검은 거래를 한다는 건 불가능해요. 어떤 치료에 무슨 약이 제일 싼지 가격 정보나 다른 정보에 대해 소비자들에게 다 공개해놓거든요.” 그녀는 진료소 문 앞에 비치되어 있는 빨간색의 약제 정보 자료집을 흔들어보였다. “이게 소비자들을 위한 약 정보 자료집이에요. 저희 같은 전문가들은 더 자세한 정보집을 봐요.” 그녀는 다른 손으로 똑같은 규격에 좀 더 두꺼운 주황색 표지를 한 전문가용 약제 정보집을 내보였다.


최고의 서비스 이면에 숨겨진 긴 대기시간, 응급환자에 대한 순발력 대처 미흡과 같은 의료서비스 한계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도 스칸츠 소장은 “스웨덴 의료제도 역시 사람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부족한 점이 있다”고 했다.

“그래도 지금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놨기 때문에 많이 개선됐어요. 이를테면 이런 규정이 있어요. 응급환자는 당장 진료를 받아야 하고, 1차 진료는 그 날 안에 도움을 받아야 하고, 한 달 안에 전공의를 만나야 하고, 수술은 3개월 이내에 해야 된다는 것들이죠. 이런 규정을 못 지킬 여건이라면 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알아내 환자를 그쪽으로 인계해요. 유럽 동맹국들과도 논의 중에 있어요. 어떤 환자가 신장 이식을 받아야 하는데 스웨덴에서 받지 못하면 핀란드의 헬싱키에 있는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한다든지 하는 거죠.”


의료 분쟁이 발생했을 때 환자는 직접 소송 준비를 하지 않는다. 그 환자가 속한 시의 복지사회부에서 환자의 권리를 위임받아 진행한다. 소송이 진료기관 대 복지사회부의 싸움이기 때문에 한국처럼 의료 사고가 발생하면 흔히 다윗(환자·보호자)과 골리앗(진료기관)의 싸움으로 표현되곤 하는 힘의 불균형 문제는 없다.

“만약 어떤 환자가 병원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면 그 환자를 맡은 간호사는 빨리 상부에 보고를 해요. 그리고 바로 대책을 세우죠. 먼저 환자가 다치지 않았는지 살피고, 치료가 필요하면 치료를 해요. 그 다음에는 재발 방지에 들어가요. 환자에게 미끄럼 방지 양말을 신기고, 바닥에는 미끄럼 방지용 장판을 깔아요. 우리도 사람이다, 그러니까 다 드러내놓고 같이 개선해나가자는 의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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