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문우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ㆍ미국 금융지배력 약화로 기축통화 지위 흔들려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이 빠르게 수습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미 달러화에 대한 유동성 부족문제로부터 발생된 달러화의 일시적인 강세 추세가 종결되고 미국의 금융지배력 약화에 따른 달러화의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 이러한 우려가 반영된 결과, 주요국 통화에 대해 미 달러화의 가치가 약세로 전환되었다. 올해 3월초 이래 달러화는 유로화에 대해 약 15% 절하되었고 엔화에 대해서도 6% 절하되었다. 한편 이러한 추세하에서 국제적으로 위상이 확대된 중국이 달러화 체제에 도전하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를 지배해 온 달러화 중심의 국제통화체제를 위협하고 있다.



러화의 기축통화 역할은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기축통화의 최대 요건은 가치의 안정성이다. 그러나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미국의 경상적자는 달러가 향후 제 가치를 유지할지에 대해 오래전부터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2008년 말 현재 약 7000억달러를 기록하였는데 이 수치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5%를 초과하는 규모이다. 뿐만 아니라 국제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급속히 재정지출을 늘리면서 미국의 재정수지도 급속히 악화되었다. 올해 미국의 재정적자는 1조85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미국 GDP의 13%에 해당한다. 이를 메우기 위해 미국은 달러화를 발행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달러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

미국은 이처럼 달러화를 찍어 내게 된 반면,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경상수지 흑자를 바탕으로 달러화 최대보유국으로 등장했다. 특히 중국 경제가 부상하기 시작하면서 중국의 막대한 무역흑자는 아시아 국가들의 달러화 축적 추세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현재 중국은 전 세계 외환보유액의 약 27%에 해당하는 2조달러 이상을 보유한 세계 제일의 외환보유국이다. 이와 같이 아시아 제국이 막대한 달러 준비금을 보유하면서 이들 국가의 달러화 수요가 미 달러화의 가치를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세계 최대의 외환을 보유한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 달러화를 투매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달러화 체제는 붕괴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시아 제국도 달러화 체제의 붕괴가 자국 경제에 유리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투매의 가능성은 높지 않다. 특히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수출지향적인 발전전략을 채택해 왔기 때문에 이들 국가에 달러화 체제의 붕괴는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미국도 달러화 투매의 위험성을 잘 인식하고 있다. 과거 미국이 압도적인 경제력과 정치력을 모두 가지고 있을 때 이러한 투매의 가능성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경제력이 약화되고 중국이 세계 최대의 공적 준비금(외환보유액) 보유국가로 등장하면서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수 있을지가 불분명해졌다. 달러화의 장래가 불안해진 것이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실제 중국은 국제금융체제의 개편을 요구했다. 특히 지난 3월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 총재는 달러화를 대체할 슈퍼 통화로서 IMF가 발행하는 특별인출권(SDR) 활용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SDR와 같은 바스켓통화가 국제통화로 사용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확실하지 않다. SDR가 도입된 지 40년 가까이 되지만 제대로 활용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로화나 엔화, 위안화와 같은 국민통화가 국제통화로서 달러화를 대체할 수 있을까? 우선 유로화의 경우를 살펴보면 1999년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가입국이 확대되어 미국에 버금가는 경제규모를 갖추었기 때문에 달러화에 대해 잠재적으로 가장 큰 경쟁자라 할 만하다. 특히 영국이 가입할 경우 엄청난 파급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그러나 단일 금융감독기관이 존재하지 않고 정치적 통일성도 결여되어 미국 달러화를 대체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따라서 유로화는 당분간 유럽 경제권을 대표하는 지역통화로 기능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엔화의 경우는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와 낙후된 금융시장으로 인해 그 위치가 계속 약화되고 있어 달러화를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한편 중국 위안화의 경우 무한한 성장 잠재력과 강력한 군사력으로 달러화와의 경쟁에서 유로화보다 유리한 점이 많다. 특히 중국이 2030년 세계 1위의 경제대국으로 등장한다면 위안화의 위치도 그에 걸맞게 조정될 것이 확실하다.

실제 중국은 홍콩 등과 달러 대신 위안화 결제를 허용하고 아시아 제국 및 러시아 등과의 거래에서 위안화 사용을 확대하는 등 위안화의 국제화를 위한 조치를 가속화하고 있다. 그러나 후진적인 각종 정치·경제·금융 시스템은 위안화가 국제통화로 기능하는 데 큰 걸림돌로 남아 있다.

이렇게 본다면 결국 국제준비자산으로서 달러화의 위상은 향후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달러화의 위상이 유지된다고 해서 달러화의 가치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국제수지 불균형이 어느 정도 해소되지 않는 한 달러화의 약세 추세는 피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특별인출권(SDR·Special Drawing Rights) = 국제통화기금(IMF) 가맹국이 국제수지 악화 때 담보 없이 필요한 만큼의 외화를 인출할 수 있는 권리 또는 통화. 가맹국은 국제수지가 악화되었을 때 IMF로부터 무담보로 외화를 인출할 수 있다.

바스켓통화 = 여러 통화를 조합하여 새로운 합성통화단위를 만드는 방식. SDR, 유럽 계산단위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참가국의 통화 중 어느 한 나라의 대외적 상대가치가 저하되어도 다른 통화의 상대적 가치가 상승하기 때문에 단위의 가치가 비교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