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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진기자 worldhj@kyunghyang.com

ㆍ토빈세 논의 이끈 NGO ‘아탁’


시민단체 아탁 회원들이 2002년 9월 독일 쾰른에서 열린 반전시위 도중 대형 플래카드를 펼쳐 보이고 있다. 쾰른 | AP연합뉴스



프랑스의 대표 지식인 이냐시오 라모네는 1997년 자신이 발행인으로 있던 시사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시장을 무장해제하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그는 “금융 세계화가 아시아 화폐시장을 강타하며 시민들의 삶을 불안하게 만들었다”면서 “자본의 이동을 규제하기 위해 토빈세 과세연합이라는 새로운 NGO를 만드는 게 왜 안 되느냐”고 주장했다. 라모네의 사설을 본 독자들이 편집진에게 보낸 편지만 5000통이 넘었다. ‘국제금융시장의 톱니바퀴에 약간의 모래를 뿌려보자’고 뜻이 모아지면서 ‘시민 지원을 위한 국제금융거래과세연합’, 즉 아탁(ATTAC)이 탄생했다. 참여가 확산되면서 전 세계 50여개국에 ‘아탁 독일’ ‘아탁 재팬’ 등의 이름으로 지부가 설립됐고, 9만여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아탁 회원들은 위계 없이 동등한 의사결정권을 가진다. 독립성을 위해 회원들의 회비만으로 단체 운영자금 90%를 조달하고, 여름에 각 대학에 강좌를 개설해 나오는 수익 등으로 나머지 자금을 마련한다.

아탁의 출발점이자 핵심 주장은 미국 경제학자 제임스 토빈이 주장했던 단기성 외환거래에 세금을 부여하는 ‘토빈세’ 도입이다. ‘투기자본의 횡포에 대항해 외환거래에 1%의 세금을 물려 제3세계 개발원조에 투입하자’는 주장이다. 아탁이 ‘토빈세’를 주요 의제로 삼은 후 유럽 각국에서는 ‘토빈세’ 도입을 논의해왔고, 지난해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도 뜨거운 논란거리로 부상했다. 지난달 로드 터너 영국 금융감독청(FSA) 청장이 “금융회사의 과도한 보너스 관행을 막기 위해 모든 금융거래에 토빈세를 도입하자”고 제안하면서 국제사회에서 토빈세는 다시 주요 안건으로 떠올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월 하순 미국에서 열릴 G20 정상회의에서 토빈세 문제가 핵심 안건으로 다뤄질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아탁 활동의 가장 큰 성과는 2005년 5월 프랑스 국민투표에서 신자유주의적인 내용을 강화하는 내용의 ‘유럽 헌법’ 부결을 이끌어낸 것이다. 프랑스 국민의 54.87%가 반대인 ‘Non’을 찍어 하나를 향해 달리던 유럽연합 열차에 제동을 걸었다. 아탁 활동가들은 프랑스 각지에서 교육캠페인을 벌이며 유럽헌법 반대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프랑스 전국에서 주최한 모임과 토론회 횟수는 무려 1000회에 달했다. 유럽헌법 안의 사회보장이나 교육 부문을 사유화해 시장 논리에 맡기자는 주장이 개개인에게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알리고 설득해 나갔다. 또한 유럽헌법 반대운동 기간에 법조계·정계에서 일하던 아탁 회원들은 유럽헌법의 내용을 요약하고, 반대 논리까지 단 안내책자도 만들었다. 초반 40%에 불과하던 반대 여론은 점점 힘을 얻었다.


아탁은 지속적으로 대안 세계화운동을 전개해나가며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1999년 시애틀에서 세계무역기구(WTO) 반대 시위를 벌였고, 2001년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글귀가 새겨진 어깨띠를 두르고 약 20만명의 아탁 활동가들이 제노바에서 열린 G8 반대 시위에 나섰다. 독일에서는 공공재 민영화에 반대하는 활동을 벌여 철도 민영화를 막아냈다. 전 세계에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10월27일에는 방문객으로 위장하고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에서 항의 행동을 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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